게슈타포 - 히틀러 비밀국가경찰의 역사 KODEF 안보총서 43
루퍼트 버틀러 지음, 이영래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예를 들어, 제정 러시아 독재 권력의 시녀였던 비밀경찰 오흐라나Okhrana1881~1917년에 대규모 정치적 반대 세력을 체포하여 고문했다. 191710월 혁명 이후 체카Cheka(반혁명 및 파괴행위 단속 비상위원회)가 그들의 뒤를 이었다. 차르 체제 전임자들의 여러 가지 특징을 그대로 계승한 체카는 침투 요원과 요원 선동가들을 이용했다.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도입한 연방국가정치보안부OGPU(오게페)와 국가보안위원회KGB는 군과 산업, 모든 주요 정부 기관들을 엄밀히 조사하는 특별 부서들을 망라하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독재 정권에서 그러하듯이 이들은 엄청난 수의 정보원들을 모았다. 정보원들의 임무는 보안 규정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고 고용인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정보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하나같이 테러와 협박에 의존했다. 2차대전 전후에 400~500만 명이 감금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스탈린 대숙청 시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로 보내졌는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독일이 은밀한 법 집행에 처음 사용한 정교한 방법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의 성공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나폴레옹 1세는 스파이 활동을 그의 군 운영 시스템의 일부로 조직화했다. 사회주의자였다가 변절한 전직 변호사 작센의 칼 슈티버Karl Stieber는 프로이센 왕의 명령으로 스파이 활동을 했다. 경찰고문Polizeirath이라는 지위를 얻게 된 그는 이 지위를 통해 정상적인 경찰지휘권과는 독립적으로 국가의 적을 찾아내는 요원들로 구성된 포괄적인 정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슈티버가 발전시킨 이 체제의 기반은 1918년 독일이 패망할 떄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12)



본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게슈타포는 독립 기구가 아니었으며 지속적으로 보안대의 감시를 받았다. 치열한 내부 경쟁 관계에 있는 경찰 기구의 모든 국과 분과들도 마찬가지였다. 게슈타포의 주요 소관 업무는 나치 정권의 적대 세력을 적발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적대 세력이란 경미한 반대 혐의자들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사복 차림의 게슈타포는 체포, 심문, 가택 수색을 수행했다. 게슈타포는 아파트 경비원부터 가게 점원, 사무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정보원을 모집했고, 이들이 정보 제공을 꺼릴 경우 가족이 곤란에 빠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가정에서 오가는 정권에 대한 사소한 비판까지도 신고하도록 세뇌시키고 설득했다. (105)



게슈타포는 1944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때까지 프랑스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따. 파리를 중심으로 130개가량의 개별 게슈타포 사무실이 그물처럼 뻗어 있었고, 그 외에도 독립적인 군사정보국과 비밀헌병Geheime Feldpolizei 조직망이 존재했다. (215)



한편 워싱턴의 미국 국립문서보관소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가 보관하고 있는 하인리히 뭘러에 관한 135쪽짜리 서류철에는 그가 전후 체코, 아르헨티나, 소련, 쿠바 정부에서 일했다는 수많은 보고와 소문이 담겨 있다. 그가 전쟁 막바지에 살해당했다거나 1946년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도 있다. 정의의 심판을 피해간 나치의 하수인으로 뮐러가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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