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광기의 권력자들
김상운 지음 / 자음과모음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교지에 실을 논단을 쓰려고 모색한 주제 중 하나는 히틀러의 광기였다. 나치가 유태인을 탄압한 것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영화와 독서, 언론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사실이지만, 도대체 히틀러와 나치는 왜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히틀러에 대해 출판된 한글책이 거의 없었다. 부산 동보서적과 부산대 앞 사회과학서점에서 <<나의 투쟁>>(청년사)과 <<히틀러>>(미야케 마사키 지음, 참한)를 찾은 게 전부였다. 참고삼아 읽었던 게 당시 <<역사비평>>에 실렸던 "장희빈에 대한 변명"이라는 논문이었다. 히틀러도 장희빈도 악명이 자자한 역사적 인물로 늘 그려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히틀러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입시 공부도 해야 했던 나로서는 더이상 깊이 공부를 할 수는 없었고 논단을 쓰는 데 방학을 온통 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결국 장희빈을 조선 권력층의 세력관계 속에서 읽어낸 그 논문처럼 히틀러를 분석한다는 것은 내 능력밖이었고 히틀러 자신의 언설이 담긴 <<나의 투쟁>>을 읽다가 그 혐오담론에 역겨움이 일었는지라, 그 주제는 포기하고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전개를 서술하는 정도로 그쳤던 일이 있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대체로 지배자들의 정복전쟁과 공적,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배운다. 제도교육에서 배우는 역사에서마저 광기가 언급되는 지배자들은 우리로 치면 연산군이나 영조, 세계사에서는 히틀러나 폴포트 같은 몇몇 지배자들이었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조금더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권력자들의 광기는 무궁무진한 일화를 통해 폭로된다. 김상운 기자가 서적과 인터넷 자료를 취합해서 정리한 이 책은 조금더 "옆으로" 혹은 "뒤로" 시선을 돌린 책이다. 이 책에서 학문적인 것 말고 항문적인 것을 기대한다면 충분히 읽을 만하다. 때로는 나폴레옹의 키는 작지 않았다거나 마리 앙트와네트는 "빵 대신 케익을 먹으면 되지"라고 말하지 않았다거나 양국관계의 배후에 왕/여왕의 애정이나 팬심이나 정신병이 작용하기도 했다는 팩트 체크도 없지 않다. 만약 서양 중세와 근세 역사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다면 군주들의 퍼스낼리티가 이러저러한 역사적 사건과 어떤 식으로 관련을 맺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게 유일한 요인이라 착각하지만 않는다면.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얻기 위해 왕비들을 폐위시키거나 모살한 헨리8세, 전용 매음굴을 운영해 국고를 탕진한 루이 15세,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는 나폴레옹 1세 일화 등은 꽤 유명한 편이고 그간 권력자의 옐로저널리즘에 무관심했던 내게는 이 책에 실린 거의 모든 권력자들의 광기가 금시초문이거니와 놀라웠다. 특히 알렉산데르 6세의 죽음은 <<광기의 역사>>를 쓴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예시한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빠뜨리는 중세의 처형술보다 훨씬 더 끔찍한다. 셀마 헤이엑이 주연한 영화 <<에벌리>>에서 일본인 고문기술자가 죽는 장면보다 더 역겹다. 종교의 탈을 쓰고 뒤에서는 간음과 축재와 범죄를 일삼는 권력자의 마지막 모습, 그 자체다. 


이 책을 읽고 당신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져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들에게 좋은 일 시키지 말라는 조바심에서인지, 지은이는 루스벨트 부자 이야기로 책을 끝맺고 있다. 컴플렉스를 타인에게 가해하는 광기로 배설하는 대신, 자신을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계기로 삼는 긍정성, 그것이 현대의 권력자가 갖춰야 할 태도가 아닐까.  



(참고로, 이 책은 표지에 있는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나처럼 지은이도 쓰려다 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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