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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철학적인 오후
하인츠 쾨르너 외 지음, 이수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 중에서도 <네 갈래 길>을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책장을 덮고도 한참동안이나 막막한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 대개는 책을 다 읽고 나면 약간의 감동과 더러는 아쉬움 그리고 책 한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지만, 이 책만큼은 나의 현실세계까지 집요하게 따라 나와서, 나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인생의 네 갈래 길에서 갈 길을 고르지 못하고 평생을 망설이다 늙어버린 처녀. 마지막 기운을 다해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았을 때 그녀는 산 너머에 자기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바다가 있고 그 네 갈래 길은 모두 바다로 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저 멀리 바다를 보며 산꼭대기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늙은 처녀의 심정이 되어 마음이 절절해지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일에 대한 갈망은 커져갔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을 키우고 다시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아이들이 클수록 엄마가 더 필요해졌고, 이제 나이 든 아줌마에게 사회는 냉혹했다. 그 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 환경관련 단체에 조합원이 되어 활동도 했었지만 30대에 사회단체활동에 전력하기에는 나는 야망이 컸다. 아이들 그림책과 동화책이 좋아서 빠져 들어 갔지만 어린이도서 관련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내 성에 차지가 않았다.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은 사회에서 한 몫을 해내겠다는 바램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남이 봐도 그럴듯한 명함이 필요했던 것이기도 했다

 요즈음 본격적으로 일을 알아보면서 나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무리 환경과 독서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어야 했다. 책상에 앉아 무수히 고민만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진작부터 단체 활동이든지 자원봉사활동이든지 눈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그 어느 것이라도 열심히 실천하고 현실에 뛰어들었다면 결국은 바다로 갈 수 있었던 것을……. 

이 글은 요즘 내가 느끼는 절망과 회한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또한 실천하지 않고 뛰어들지 않고 머뭇거리며 무수히 고민만 했던 결과를 내게 보여준다. 누구나 쉽게 읽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단순한 동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가 이토록 뒤통수를 강타하고 마음을 후벼 팔 수 있는 것, 그리고 독자가 책에서 나와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또한 동화의 이 아닐까.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비껴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고민을 직시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보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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