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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학창시절 '쓰리걸즈'로 불리던 여자친구들이 있었다.
글쓰는 직업을 가진 독신의 다미코, 영국에서 생활하다가 이제 귀국한 활달한 리에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사는 사키다.
출석부에 이름이 나란히 있어서 친해졌던 세 친구는 리에가 영국 생활을 접고 귀국하자 50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뭉치게 되었다.
이 세 명의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리에의 조카인 10대 사쿠와 사쿠의 친구 아이리, 다미코를 잘 따르는 죽은 친구의 딸인 마도카와 마도카의 연인인 리쿠토, 그리고 다미코의 어머니 가루오의 이야기들이 잔잔한 일일 드라마처럼 엮인 소설이다.
사실 잔잔하다고 하기엔 내부로 들어가서 당사자가 되어보면 큰 사건일 수도 있다. 연인과의 이별이라던가 도박으로 경찰서 신세를 진다거나 백내장 수술을 받는 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그러나 옛 연인이 편안한 친구가 되고 젊은 시절에 열심히 노력해서 따놓은 수많은 자격증들이 든든해지는 나이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소설내에서는 분명 호들갑스럽지만) 읽는 나에게는 차분하단 느낌이 들게 했다. 35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자극적이라던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들은 없었다.
번역가 김난주님의 표현대로 어디에나 있을 법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하고 전형적이면서도 조금은 다른 오십대 후반의 세 여자를 둘러싸고 흘허가는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 이 책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이다.
다미코와 리에 그리고 사키는 대학 시절 서양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과 옷,가구와 습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세대니 서양의 문화가 매우 생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쓰리걸즈는 외국 소설에 묘사된 물건이나 음식등을 상상하고 제멋대로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들이 많았다.
어딘가 레트로하고 기품이 있어보이던 물건의 실재를 알고 나서는 실망도 하지만 그 당시에 검색기능이 없던 점을 다행이라고도 여긴다.
📔 인터넷이 정말 편리하더라. 뭐든 조사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 시절에도 인터넷이 있었다면, 포크파이 해트도 셔닐도 바로 검색해서 알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기도 해. 안 그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기억하리만큼 인상적이었던 거잖아 P188
📕 사키가 사진을 보여 준 후로 다미코는 문득문득 셔닐 손수건과 그에 대한 실망이 떠오르곤 한다. 셋이 뭘 모르고 오해했을 뿐인데, 왠지 배신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P200
📗 "우리 참 오해가 많았던 인생이네." P204
그이들이 상상한 포크파이 해트와 셔닐, 그리고 캔덜루프 멜론등을 책을 읽으면서 나도 검색해봤다.
셔닐 손수건은 나도 실망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리에덕분인지 책에는 다양한 와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낯선 이름의 와인이 하나 있어서 검색해보니 일본에서만 유통되는 와인이었다.
맛이 궁금해진다.
간혹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준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다음 문장들에서 그랬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얼마나 낯선 곳인지 p8
📍마음을 그렇게 자주 열지 않아도 되잖아? p113
📍그것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안심되는 침묵이었다. P299
이전까지 에쿠니 가오리의 글들은 사랑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도발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때로는 서늘하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이 작품은 조금 결이 다르다. 물론 리에의 연애가 들어있긴 하지만 손쉽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의 깊이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나이드는 것처럼 에쿠니 가오리도 나이들었구나가 느껴졌다.
그 점이 아쉽기도 하면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와 함께 비슷한 속도로 걸어가는 존재가 있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미코와 리에와 사키는 그래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이들이 운이 좋을 수 있던 또다른 이유는 가오루같은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오루처럼 귀엽고 열정적인 할머니가 되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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