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란 책으로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철학가다.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녔지만 그는 독일어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그래서 그이의 책은 번역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경우 나는 한병철 교수가 한국인이 아닌 독일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영어는 경제적인 언어라서 애정이 잘 가지 않고 독일어가 철저하게 시적인 언어라서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현재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자라고 했지만 사실 이전 책인 피로사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병철이란 이름의 신간은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이 책은 그의 강연을 기록한 책이다. 2023년 4월에 라티프치히에서 [생각의 음조] 강연을 포르투에서는 [에로스의 종말]강연을 , 리스본에서 [희망의 정신]이란 제목의 강연들을 했다.같은 시기에 진행된 강연인 만큼 저자가 정원을 가꾼지 3년이 되었으며 방에서는 항상 꽃향기가 나며, 그래서 자신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는 고백들이 있다. 정원을 가꾸며 종교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진정한 생물학은 신학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에게 무신론자가 된 생물학 전공자는 왜요?라고 묻고 싶어졌다. 한편 한병철교수는 자신의 강연이 유투브 등의 비디오 클립으로 박제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 글로 담았다고 기획자는 설명하고 있다. 한병철 교수는 자신은 반복이 아닌 끊임없이 변주를 하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자신의 사유는 그랜드피아노와 음악이 가져다주는 상상의 비행속에서 익어간다는 고백도 한다. 우연히 너무나 아름다운 그랜드 피아노를 발견한 후 , 곧장 사와서 평소 가장 좋아하던 바흐의 골드베트크 변주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무려 2년의 시간동안 종교적인 수련을 거쳤다고 한다.자신의 생각은 슈만의 아침의 노래와 닮아서 밝은 슬픔을 지니고 있다고도 고백한다. 만일 내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이 강의를 들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상상이 되지 않았다.그렇다면 한국어와 한국의 음악을 사랑하는 철학자의 강연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음악과 한국의 시를 음미하며 싶은 사유의 정서를 나눈다면 정말 행복했을 것 같다. 한병철 교수는 독일어이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책의 말미에 한국은 너무나 폭력적이 되었다고도 기술한다. 뭔가 씁쓸한 감정이 들게하는 1장이었다. 강연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들어가있다. 참으로 행복해보이는 얼굴이었다.바흐와 슈만을 정말 사랑하는 철학자라는게 느껴졌다. ㅡ 모든 아름다움은 모순입니다. 모순 없이는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저는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진실은 이러한 아름다움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p242장의 제목은 에로스의 종말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타자에게만 향할 수 있는 것이 에로스라고 한다. 다른 언어는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와 사고체계가 다른 사람, 나와 환경이 다른 사람 즉 내가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타자일 것이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에로스일 것이라고 이해했다. 카르카는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편지로 소통하는 것조차 의심했다고 한다. 바로 만질수 없는 타자의 부재가 우울의 원인이라고 한병철 교수는 진단을 내린다. 코로나 팬데민으로 화상미팅등이 많아지면서 디지털 거울 속 자기 모습을 검열하면서 신체적 결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줌 이형증을 설명하는데 이런 현상을 마음 속에만 최적화의 광기를 극한으로 가도록 만들어서 생긴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스마트폰으로 시선이 사하지면서 공감이 어려운 시대(P81)를 사느라 다들 동일성의 지옥에 빠져서 사랑도 사랑이 아닌 성과의 일부로 바라보는 현상을 개탄하면서 저자는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아노말리사"라는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언급한 음악들을 찾아들었다. (개인적으로 글랜군드보다는 손민수님의 골드브루크 변주곡이 나는 더 좋았다.) 책도 많이 추천한 책인데 이 영화는 꼭 보고 싶어졌다.마지막 3장이 희망의 정신이란 제목의 강연이다.가장 몰두해서 읽은 장이었다. 희대의 정치사건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정말 어울리고 적절한 글이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읽어도 좋은 내용이었지만 응원봉시기의 요즘에 잘 어울리는 내용들이 듬뿍 담긴 3장이었다. 한병철교수가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본인이 좋아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읽어줬더니 음대생이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감상을 남긴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 우리 사회가 초월성없이 성과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인류 역사 최초의 사유는 닭살이라고 이야기한 저자는 철학자를 마술사이자 매혹하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축제는 서사의 시간이고 노동은 누적의 시간이라고 명명하는 지점까진 이해는 했다. 그러나 평소 일상을 유지하고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일상에 충실한 삶, 자신을 고양시키지 않는 삶은 버려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브리엘 마르쉘이 정의한 평화에 대한 부분뒤부터는 매우 집중하고 동의하고 속으로 박수까지 치면서 읽었다. 기획자가 왜 이 순서로 책을 편집했는지 깨닫기도 했다.가브리엘 마르쉘은 희망은 현실에 신용을 부여하는 것이며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단다. 비판도 행동도 없는 낙관주의가와 다르게 희망은 행동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극도의 회피라고 비판했던 카뮈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세계 안에서 존재하기를 꿈꾼 하이데거와는 다르게 저자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이 희망의 기본 공식이라고 천명한다. 불안이 우울을 증폭시키고 생각없는 순능주의자로 만드는 것과 다른 것이 희망이라고 주장한다.희망은 그리고 희망하는 사람은 '나쁘게 존재하는 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어서 우리가 닫혀있는 감옥같은 시간을 탈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편안한 마음을 따르는 긍정심리학과 희망은 다르다고 말한다.긍정성의 숭배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이지거으로 만들어 자기의 편안함에만 관심을 두게 하지만 희망은 부정적 측면을 기억하고 사람을 한데 모이게 하고 화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희망의 주체가 '우리'라는 말이 참으로 좋았다. (P157)의미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희망이며 희망의 분위기 속에서 대화와 화해가 가능할 때 민주주의가 번영된다고 말한다. 2024년 12월의 대한민국을 위해 해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독일인이 된 한국인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책이었는데 왜 한병철교수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는 철학자인지 깨달았다.힘과 에너지가 넘치지만 예술을 사랑하고 종교적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정말 매력적인 철학자였다. 다른 세상, 더 나은 새상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혁명의 잠재력이 자라납니다. P169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적은 후기입니다.ㅡ #생각의음조 #한병철 #최지수옮김 #디플롯 #한병철콘퍼런스트릴로지1#생각의음조 #에로스의종말 #희망의정신#컬처블룸 #책읽는과학쌤 #콜라에취한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