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역사 -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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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ners maketh Man"
영화 킹스맨 덕분에 익숙해진 문구다.
매너와 사회적 에티켓등은 계급을 나누는 중요한 수단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었고 사람의 몸에 배어있는 몸가짐과 말투로 그 사람의 수준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소비의 역사>라는 책으로 익숙한 설혜심교수의 (이번에도 두껍지만 매력적인) 신작 [매너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시작된 서양 매너 교육의 기원과 역사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리스 시절에는 예절이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서양의 모든 것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매너와 예절 역시 아리스토 텔레스로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 철학자다. 그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아가톤(좋음)을 추구하기 위한 것 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책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라는 것에는 나는 좀 유보적인 입장이다.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를 필기한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편집한 책이다. 성경이나 논어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가톤이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보았다.
이 아가톤은 본성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습관에 따라 탁월해지기도 열등해지기도 한다고 봤다. 비슷하게 도덕적 미덕 역시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봤는데 미덕을 행하는 일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도덕적 성품을 습득했다는 증표로 본 것이다. 좋은 습관을 통해 미덕을 실천할 수 있고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인간의 행복을 활동 개념으로 파악하고 실생활에서의 지식을 중요시했다는 것이 신선했다. 그래서인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아끼는 친구이자 제자였던 테오프라스트의 <성격의 유형들>에 나오는 꼴사나운 사람들의 특징은 현대에 봐도 공감할 내용들이 많았다. 눈치없는 사람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을 사회악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에는 적극 동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매너의 중요한 원칙을 만들었고 이 원칙들 아래로 매너는 더 정교화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원칙은 중용과 자제력과 우정(친애, philia)다.
중용이란 덕목은 동서양에서 거의 비슷하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느낌이다. 부족하면 무심하거나 낭비거나 두려움이고 넘치면 오지랖과 인색함과 무절제가되는 것이 중용인데 가장 중요한 만큼 가장 실천하기 힘든 항목같다.
두번째는 자제력이다.
자제력은 충동에 대한 경계를 말한다고 한다.
그리스 이후 근대 이전까지 매너교육은 남성위주인데 이 자제력은 계속 강조되고 되풀이되는 느낌이다.
영국의 젠틀맨에게 요구되었다는 침착함이 이 자제력의 연장선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ㅡ 폴라이트니스(politeness,세련됨)는 침착하고 고요하며 조용한 행동에 있다. p259
ㅡ 사회의 금기가 자기 통제의 형태로 본능 속에 이미 구축된 과정이 문명화 p57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은 평등한 시민들 사이의 친애를 바탕으로한 예의바름인데 무척 현대적인 개념이라고 느껴졌다.
예절이 계급구별의 수단이 된건 키케로부터라고 한다.
키케로가 제시한 데코룸decorum은 고대 사회에서는 매너의 이상적인 형태였다고 한다.
키케로는 내면과 외양이 일치라는 19세기 이전까지 매너의 절대적인 전제를 만들었고 생리현상과 신체기관의 은폐를 처음으로 말한 사람이라고 한다.
신기한건 생식기와 배설의 은폐는 중세의 예법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가 르네상스 시대부터 중요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생식식와 배설의 은폐의 이유를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생각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사람이 키케로라고 한다.
키케로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것은 귀족사회의 우아한 예법으로 전수되었다.

예법이 계급의 구별이 되면서 앉는 자세와 절하는 법, 심지어 발음까지 유행이 생겼다.
(예법이 시대와 공간 사회상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한 사람은 에라스뮈스라고한다)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귀족의 사교계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기면서 매너와 평판은 더욱 중요해진다.
<매너 있는 사람>과 <품격있는 아카데미>같은 책들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ㅡ 평판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사실 촘촘한 감시망이 작동하는 곳이었다. ... 어떤 학자는 "예의바른 사회"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묘사한 바 있는 "권력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영구적인 가시성과 의식상태를 말하는 파놉티콘과 닮았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촘촘한 감시망은 달리 보자면 잘 짜인 네트워크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매너는 그 네트워크를 통해 소소한 영향력을 퍼트린다. <매너있는 사람>은 <품격있는 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매너가 가진 사회적 확산성에 주목한다. p300

매너의 확산성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글거린다는 말때문에 감성이 사라지고 선비라는 말이 나오자 절제하는 사람이 사라진 현 세태역시 비난과 경멸이라는 태도가 힙한 매너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매너의 확산이 아쉽다.

18세기 후반부터 여성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르네상스 시기에 사라진 에티켓이란 단어가 부활했다.
19세기부터 예법은 에티켓으로 대치된다. 예법과 에티켓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근거로 도덕적 요소를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ㅡ 기존 예법서가 중용을 내세우며 식탐을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면, 에티켓북에서는 '다음 코스가 나오는 것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p350

거창한 도덕담론이 없어지면서 에티켓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세세한 행동 지침처럼 보이지만 예법이나 에티켓 모두 TPO준칙 , 시간과 장소 그리고 성격에 맞춰야 한다는 대전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에티켓은 TPO만큼이나 계급성을 드러내고 지켜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계급성은 신분이 없어진 시대에서는 결혼 유무로 표현된 것 같다. 빨간머리 앤등을 읽으면 조숙한 여자아이들이 그 나이에 금지된 길이의 치마를 입거나 머리를 묶는 장면을 호들갑스럽게 표현되는 것들이 떠올랐다.

20세기 들어오면서 계급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매너의 영역은 바뀐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직장내에서의 에티켓, 68혁명의 여파로 일어난 성해방은 킨제이보고서라는 인간의 성적행동을 분석한 보고서 섹스에티켓등이 생겼다.
매너의 초점이 계급에서 개인으로 바뀌면서 사회적 합의에 의한 형식적 매너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적이고도 세심한 아주 다양한 매너들이 중요해진 것이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매너에서 에티켓으로 배려로 점점 섬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ㅡ 장구한 매너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 날 에티켓 규칙들은 훨씬 단순해졌다. 하지만 그 원론적인 규범들은 여전히 중요하며, 수많은 사람과 교류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의바름과 품격으로 사람을 구별짓는 가치와 효용은 여전하며 그것은 계급의 울타리를 벗어나 온전히 개인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 p589


매너의 역사에서도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이 발생했다는 점이 재밌었고 프랑스식 매너의 반발로 젠틀맨이 만들어졌다는 걸 새로 알았다.
의외로 춤을 배우면서 우아한 몸가짐을 익히라는 강조가 많았던게 신선했고 20세기 계급이 무너진 이후 만들어진 에티켓들은 모두 빨리 익혔으면 싶었다.

개인적으론 겉표지를 벗긴 상태가 더 예쁘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들고다니면서 읽기엔 무거웠지만 좀 얇았다면 뭔가 '있어빌리티함'을 뽐내기 위해 들고 다녔을 것 같다.
요즘 허세독서, 과시용 독서라는 말이 나오는데, 가식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허세라는 것이 무조건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로크는 비난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어필하고자 일부러 했던 행동이 진짜 나의 습관이 되는 경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너역시 그런 종류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매너는 배려와 동감의 결과물이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동감하는 행동들을 억지로라도 하다보면 절로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좋지만 배려가 지능이란 말이 더 좋다.
매너와 배려는 사회지능이라고 믿는다.
나도 내 주변인들도 사회지능이 높은 사람들이길 소망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매너와 예절, 배려는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읽고 적은 후기입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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