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감을 주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매우 많아진 요즘이다. 많이 늘어났지만 언제나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과학 지식을 전달해주는 이정모 관장님의 강의와 신작은 기다리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이번에 읽게 된 찬란한 멸종은 가제본 서평단에 뽑혀서 읽게 되었다. 가제본이라고 해서 어떤 형태로 올까 싶었는데 판매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새였다. 책을 열자마자 지질연대표가 나온다. 매년 적어도 3차례 이상 수업하는 부분인데도 누군가가 정리해 놓은 표를 보면 질서정연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김영랑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의 유명한 구절인 "찬란한 슬픔의 봄'이 떠오르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멸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ㅡ 멸종이란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p21그래서 멸종은 일반적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자연사 적으로 오파비니아라는 생명체의 멸종을 아쉬워한 저자의 마음이 이해되긴 했다. 멸종에 대해 이런 태도를 이야기하는 건 책에서는 2150년의 인공지능이다.이 책은 각 파트 ,각 챕터마다 화자가 다르다. 때로는 범고래가 때로는 네안데르탈인이 때로는 다윈이 ,공룡이 ,백상아리가 그리고 지구가 각자의 위치에서 멸종으로 향해가는 인류에게 한 마디씩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뒤로 갈수록 과거의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 맨 뒤에 지구에 떨어져 나온 달과 지구의 바다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지구의 역사를 제대로 차분하게 알고 싶다면 역순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책에 나온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평소의 관심 분야였던 미토콘드리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챕터가 가장 흥미로웠다.38억년 전에 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고 불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의 등장 이후 루카에서 세균과 고세균이 생겨났다. 대부분이 혐기성 세균들이던 그 시기에 배고팠던 혐기성 세균하나가 호기성 고세균 몇 개를 꿀꺽 삼켰는데 소화되지 않았다. (p313) 이후 호기성 세균과 혐기성 세균의 공생이 시작되면서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고세균은 미토콘드리아로 불린다. 호기성 세균과 혐기성 세균의 공생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세포내 소기관이 일을 하는 진핵생물이 등장한다. 약 20억년 전에 등장한 '최초의 진핵생물의 공통 조상'을 우리는 페카 FECA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미토콘드리아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ㅡ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도 주고 섹스도 가져다 주었지만 영생을 주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명계에 존재하지 않던 죽음을 처음 발명했다. p321사실 최초의 죽음은 개체의 죽음이 아니라 세포의 자멸 (apoptosis) 였다. 개체 안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방식으로 세포의 자멸은 진행된다. 이 죽음이 생김으로 환경에 적합하지 않는 형질들이 제거되었다. 즉 미토콘드리아가 발견한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다. 미토콘드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생명의 연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무려 20억년의 기간 동안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사멸을 이끌어 개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개체의 죽음을 이끌어 개체군의 건강을 지켜준다. 이 작은 세포 소기관이 해내는 일은 언제나 대단하다는 감탄이 든다.현대 인류에게 SLC16A11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에게 받은 것이다. 이 유전자는 당뇨와 남성형 탈모유전 그리고 비만을 불러일으킨다.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인을 제외하면 전 세계 인류에겐 1~4% 정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당뇨와 비만이라는 유산만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것은 아니다. 면역반응도 네안데르탈인에게 받았고 FOXP2 라는 언어 유전자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받았다. 우리보다 덩치가 더 크고 언어도 사용하던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를 저자는 작은 사회만 구성한 결과 생기는 사회성의 부족과 짧은 기대수명 탓에 유년기가 짧은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ㅡ네안데르탈인은 항상 작은 사회만 구성했다. 현대인에게 남아있는 자폐 유전자 역시 우리 네안데르탈인이 남겨준 것이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사회성도 상당히 떨어진다.....특히 유년기가 짧다는 것은 우리 네안데르탈인에게 치명적이다. 유년기는 정말 중요한 시기다....안전하게 머물면서 복잡한 사회 규칙을 배우고 생존 전략을 깨닫고 놀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시기다. 창의력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별난 아이디어가 아니다....창의력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놀아야 한다. p152~154 요약 발췌이정모관장님은 강연 때마다 아이들을 놀게 해달라는 이야기를 정말 자주 하시는데 이 구절을 읽으며 강의하시던 모습도 떠올랐다. 창의력의 부족은 바늘귀가 있는 바늘을 발명하지 못 하게 했다. 바늘귀가 있는 바늘이 없던 네안데르탈인들은 빙하기에 취약했다. 팔다리를 가릴 옷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만 남은 것이다. 많이 놀아야 제대로 생각하고 창의력을 꽃피울 수 있다는 관장님의 하소연에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교육관을 바꿨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더불어 펭귄과 바다표범,고래와 산호초들이 지상위의 생명체들을 위해 바다의 산성화를 막으면서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거하는지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책이기도 하다.(물론 지상위의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다표범이나 고래가 바다에서 응가를 하는 건 아니지만)상어가 네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며 생태계의 핵심종이란 설명은 신기하기도 하고 기회주의자적 행동이 생존을 도왔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역시 과학과 자연에 인간적 윤리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한번 더 생각했다.사실 몸집이 작은 공룡이 더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음에도 항상 새롭게 다가온다. 트라이아스기의 최고 포식자였다는 포스토수쿠스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공룡이다. 포스토스쿠스는 고생대 페름기에 등장해 중생데 트라이아스기까지 존재한 동물그룹인 아르코사우루스(지배하는 파충류)였다. 이 공룡이 살던 시대는 빈번한 화산활동으로 산소 농도는 낮고 기후 변동이 잦고 온도는 높았다. 이런 환경에서 환경에 적응하여 해부구조까지 변화시키는 다른 동물들의 모습을 포스토스쿠스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구조는 신선하며 재밌었다. 자신과 디노사우루스(공룡)을 분리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모두 같은 공룡으로 퉁쳐서 이야기하던 습관이 조금은 미안해진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거대한 공룡들은 새로 변화해서 현재 우리 곁에도 남아있다. ㅡ 슬프다. 고요 속에서 나는 우리 종족의 지배력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공룡은 놀라운 적응력과 끊임없는 추진력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한때 우리의 포효가 가득했던 풍경이 이제는 공룡들의 짹짹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우울하지만 공룡들의 변화에 존경을 표할 수 밖에 없다. 고백한다. 나는 공룡의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질투가 질투에 머물렀다는게 우리가 몰락하는 원인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 되어야 했다. p231사실상 화성의 테라포밍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화성은 지구와 내부 구조가 달라서 지구처럼 내부 자기장을 만들지 못한다. 화성 자기장이 없으면 태양풍들을 막을 수 없기 떄문이란다. ]늙음은 인간 만의 특징이다. 야생동물들은 늙기 전에 자연사한다. 자연사라는 것은 잡아먹혀 죽는다는 걸 뜻한다. 사람만이 늙기 때문에 사람은 자연사가 아닌 병사를 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며 자연의 역사,자연사는 멸종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 책과 같은 자연 역사서를 읽고 자연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류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할 지를 따져보기 위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업하다보면 왜 우리가 이걸 배우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멋지게 해줄 말을 알려줘서 감사하기도 했다.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을 따로 정리해서 두고 싶을 만큼 환상적인 책이었다. 표지에 " 소설보다 재미있고 다큐보다 감동적이다'라고 쓰여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ㅡ 생태계의 모든 구성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다. (p184)ㅡ 모든 생물은 생태계의 틈새 하나를 맡아 자기 삶을 산다. (p95)부디 인류세의 강은 건너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찬란한멸종 #이정모 #다산북스 #거꾸로읽는_유쾌한_지구의_역사#털보관장님 #자연사는_멸종의역사 #변화와혁신#책읽는과학쌤 #네이버블로그_#콜라에취한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