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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생명 공부 -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4월
평점 :
신뢰하는 출판사와 신뢰하는 저자가 만난 책이 나왔다.
당연히 그 책을 읽어야만 했다.
송기원 교수의 생명공부다.
이 책은 저자의 생명(2014년 출간)의 개정 증보판이다. 10년의 시간동안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고 생명과학은 점점 빠르게 정보 과학으로 변화하면서 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대치가 상승하고 있다.
나 역시 저자처럼 생명과학이 이제 그만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가끔은 나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생명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생명을 살린다는 실용적이며 간절한 소망들이 발전 속도를 가속화 시킬 것이며 무엇보다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연구는 진행될 것이다.
17개의 질문을 통해 현재 생명과학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 학생들을 위한 과학 교양수업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만든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망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ㅡ 지구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움직이는 논리가 같고, 인간이 지구의 생물 중 중 단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p10
생명과학에 대한 17가지 질문들로 이루어진 책의 첫 번째 질문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다.
마치 아름다운 수필처럼 쓰인 1장에서 저자는 생명체와 무생물체의 차이점을 확실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고백을 한다.
더불어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인용하며 인간의 유한성, 불완전성이 인간이 생명체라는 증거라는 점도 이야기한다.
흔히 여러 다른 책들은 일반적으로 생장과 생식, 자극과 반응, 물질대사를 생명체의 기본 특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대부분의 지점들에선 동의하지만 모호한 경계가 많다는 생각은 했다.
불완전성, 유한성 그리고 비가역성을 인간이라고 한다고 훗날 기계도 대체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비가역성을 생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실제로 타임지는 2045년이 되면 로봇과 결합하여 노화를 극복해낸 신인류 호모에볼루티스가 등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생명의 정의는 더욱 모호해 질 것 같다.
2장에선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를 화두로 꺼내며 내가 가장 존경하는 다윈을 이야기한다.
먼 옛날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생명체는 저절로 생겨난다는 자연발생설을 경험적으로 믿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파스퇴르에 의해 생명은 생명체에서 나온다는 생물속생설 (바이오 제네시스 biogenesis) 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 다윈의 통찰 덕분에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하며 화학적 반응으로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ㅡ 다윈으로부터 시작되어 오파린과 홀데인에게 계승된 생명체가 원시 지구에서 수프 상태로 다량 존재하던 유기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명의 기원에 대한 가설은 1950년대 초 시타고 대학교 박사 과정 학생이던 스탠리 밀러에 의해 증명되었다.
p44
다윈의 진화론은 분자유전학을 만나 더 빛을 발했다. 하나의 생명에서 시작했다는 다윈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ㅡ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단세포 효모부터 인간까지 다양한 생물이 많은 유전 정보를 공유하며 인간과 침핸지는 유전정보가 98퍼센트 동일함이 밝혀졌다. 단순히 유전 정보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논리로 생명을 유지한다. p51
[ 다윈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 특별한 생명체가 아니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유한 논리인 진화에 의해 지구에 출현한 여러 생물 중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인식 전환의 틀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 -p50
다윈의 팬이라서 2장에서 언급된 다윈의 이야기들은 더없이 뿌듯했다.
생명체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묻는 3장에서는 <생체는 고분자 화합물(유기화합물)의 집합체>라고 명명하며 이름들이 익숙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과 핵산(DNA & RNA을 설명한다.
이 책에는 꽤 많은 시가 소개되는데, 3장 마지막의 김지하 시인의 <새봄 8> 이란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시인의 노년이 내 기준에서 많이 실망스러웠는데 이 시를 쓴 시인 김지하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생명의 기능단위는 무엇인가란 제목의 4장은 세포의 구조와 기능을 설명한다. 매우 교과서적인데 대학원 수료로 배움을 마친 나와 다르게 계속 학문의 길을 걷는 저자가 나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저자는 세포 내부의 DNA를 현미경으로 관찰할 때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노라고 이야기한다. 마치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똑같은 장면을 관찰할 때 별 느낌이 없었다.
학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저자의 모습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5장의 제목은 생명의 정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제목이다.
DNA의 발견과 우리 몸에서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하는지를 설명한다. 아무래도 이 5장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후생유전학에 대한 설명이었다.
인간에 대해 본성과 양육환경 중 어떤 것이 중요하느냐고 할 때 아무래도 유전자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유전자가 환경에 반응하는 경험에 의해 나타나는 형질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후생유전학은 환경의 영향으로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며 다음 세대로까지 넘어가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다.
DNA는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일종의 패키지인데 그 패키지를 살짝 조절하거나 DNA 자체는 변화시키지 않고 발현을 조절하는 방법은 세포 내 패킹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고 한다.(121) 이 후생유전학에 의해 시스템 생물학이란 분야가 새롭게 생겼다고 한다. 시스템 생물학이란 생명체를 단순한 유전자 발현의 합이 아닌 유전자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유지되는 복잡한 네트워크로 설명하는 분야다.
유전자뿐 아니라 환경과 경험 그리고 내 삶의 방식이 내 DNA 패킹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조금은 버겁게 다가왔다.
6장은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DNA 시퀀싱 기술과 DNA의 원하는 부분을 복제 증폭시킬 수 있는 중합 효소연쇄반응인 PCR 등에 대해 서술한다.
6장과 인간에 의한 생명의 변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7장 그리고 생명체의 교정과 편집에 경계가 있는가라는 제목의 8장은 내용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일단 생명체 각각이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 전체를 '유전체 genom'라고 부른다.
앞서 말한 시퀀싱과 PCR 기술에 유전자가 이 기술이 더해져서 맞춤아기 탄생이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의 원하는 부분을 자를 수 있는 물질이다. 1970년대부터 사용해왔지만 정교함이 부족했다. 그러나 2013년 꿈의 기술인 크리스퍼 ( CRISPER-Cas9 )가 인간의 손에 들어왔다.
*콜라과학쌤 설명 _ 자연계에 존재하는 제한효소들이 있다. 이들이 DNA를 자를 때 이용하는 물질인데 세균의 효소이며 과학자들은 수백 개의 제한 효소를 찾아냈다. 어떤 제한효소는 DNA의 특정 부위만을 자르는 성질을 가진다.
크리스퍼의 경우 DNA를 찾아내는 RNA와 제한효소 중의 하나인 Cas9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전에 비해 단순한 구조이며 한 번에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손볼 수 있어서 연구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러나 아직 오작동에 의한 보호장치가 없어서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편이다. 유전자 가위인 제한효소와 반대로 유전자를 붙이는 물질은 DNA 리가아제 ligase라고 부른다.
크리스퍼 기술 이후 2018년 인류 최초의 맞춤아기가 중국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p170)
이제 과거에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유전병들도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인간 수정란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윤리적인 반대와 실질적 필요성 사이에 있다.
사실 가계에 확실한 유전병이 존재한다면 인공수정으로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들어서 미리 검사한 후 건강한 배아를 선별하고 있다. 유전자가위를 쓰지 않을 뿐이지 어느 정도 맞춤 아기들은 존재해왔다.
유전체 검사도 손쉬워져서 신생아의 피 한방울로도 유전체 정보를 읽어서 질병등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영화 가타가의 장면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비용과 인력, 시간이 필요한 거대과학이 이제는 생명과학으로 옮겨오고 있다.
유전체 정보로 보험회사는 고객을 등급으로 나누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미 중국은 유전자 검사 결과로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한다.
더불어 유전공학을 넘어서서 새로운 시스템의 생명체를 만들고자 하는 합성생물학이 만들어졌다.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명제 아래, 생명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보는 학문이다. 생명체를 제대로 이해함으로 다양한 의약품 생산과 질병치료, 에너지 생산과 환경 오염 물질 제거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현 시점에서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6~8장까지의 내용은 인간에 의한 생명 재생산을 이야기하는 11장의 복제와 내용이 연결된다.
복제한 나는 진정한 나인가 하는 존재론적 질문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저자는 블레이드 러너와 2001년의 영화 비밀 (에바 호프먼 원작)을 추천하는데 나는 최근 봉준호 감독이 선택했다는 미키7을 추천하고 싶다.
9장은 생명이 생명을 만드는 과정 즉 세포분열과 생식을 설명하고 10장은 생식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정란의 발생과 분화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줄기세포 개념이 등장한다.
초기 수정란은 단 하나의 세포인데 전능성을 가진다. 즉 수정란이 인체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1개였던 수정란은 체세포분열을 하며 세포의 수가 2,4,8,16 하는 식으로 늘려가고 이 상태의 세포들이 배아줄기세포인 것이다.
많은 가능성을 가진 세포이지만 난자 채취는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다. 황우석사태 시절 고등학생에게까지 난자를 기증받으려고 하는 행태와 그 모습에 가만히 있던 여성계에 분노했노라는 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분화된 배아는 12장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알다시피 우리는 산소를 이용하며 살아간다. 산소라 인체 내의 세포로 들어가 세포호흡을 해서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노화물질인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 노화시계인 텔로미어는 많이들 알고 있는 단어인데 책에는 GDF11이라는 단백질이 등장한다. 이 단백질이 부족할 경우 노화가 진행된다고 알려져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미생물과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13장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세균은 전제 지구 생물 무게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인간이 세균을 박멸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환상이다. 또한 미생물 덕분에 우리는 지구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
수업시간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다르니 감기걸리면 약국에서 항생제가 아닌 항바이러스제를 달라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에 대한 설명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수수께끼 물질인것 같다.
14장은 자극과 반응을 이야기하면서 수능에서 준킬러 문제로 종종 나오는 인체의 신경전달 시스템이 소개된다.
재밌는 건 신경전달을 이야기하면 보톡스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사랑은 뇌에서 호르몬과 신경 전달 물질을 통해 조절되는 생화학 반응으로 설명된다고 저자는 말한다.(p309) 호르몬은 16장에서 자세하게 설명된다.
면역을 이야기하는 15장이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의 아와 비아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점이 신선했다.
진화과정에서 나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의 면역계가 되었다. 이 면역체계의 경우 매우 고마운 시스템이지만 동시에 장기이식 수술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앞의 11장에도 언급되었던 내용인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장기이식용 맞춤형 아이도 탄생하고 있다. 영화 아일랜드가 떠오른다. 영화나 문학이 보여주는 기술을 실제 과학이 따라가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놀랍고 오싹해지기도 한다.
17장에서는 생명과학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정말 많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자칫 과학발전의 규제로 작용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회사에 의뢰하여 내 유전체를 검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식이요법과 운동방법, 약을 선택하는 건 물론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내 유전체 정보가 유출되거나 어딘가 나와 동일한 생명체를 복제할 수도 있는 세상에 산다는 건 너무나 무서울 것 같다. 영화 아일랜드처럼 노화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복제된 나를 만들고 싶지도 않다.
인간의 불완전성에 좀 더 관대해지자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는 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이란 생각은 한다.
은하철도 999와 같은 미래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의 일침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ㅡ 30여 년간 생명이 유지되는 논리를 공부해 오면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 중 단 한 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의 다른 많은 생명체가 지구의 생명 순환에 나름의 공헌을 하는 데 비래 인간은 지구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에 철저히 기생하면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지구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눈앞의 여러 가지 욕망에 발목이 잡힌 인간은 생물계에서 기생체나 포식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잊고 지구에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핵심인 평화로운 순환구조를 망가뜨리고 있다. 실제로 생식 가능 연령의 2배 이상을 살며 끊임없이 자원을 소모하는 생물종은 인간 밖에 없다. p363
이 책은 친절하며 쉽게 설명되어 있다.
백과사전처럼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대학 교양 수준에서 배울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다.
유발 하라리가 책 제목으로도 사용하며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로 가고 있다.
합성 생물학과 같은 생명과학의 기술발전으로 모든 생로병사를 인간이 관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구글 베이비는 낯설지 않으며 어느 시점에서는 진 리치(gene rich)가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논리를 알고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런 시대적 흐름에 이 책의 등장은 참 귀하게 느껴진다.
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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