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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롱이 이야기 - 아직 그리고 있습니다, 그 병아리
김진솔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아직 그리고 있습니다, 그 병아리 뾰롱이 이야기'를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노란 병아리 뾰롱이였습니다. 귀엽고 단순한 그림을 보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며 글을 따라가다 보니 이 귀여운 캐릭터 뒤에 생각보다 길고 힘든 시간이 숨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책은 4컷 또는 그 이상의 만화와 그 그림에 이어지는 에세이를 함께 읽는 방식이라 무거운 이야기도 조금은 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글로만 읽었다면 작가의 방향이나 이야기 전개가 그다지 가볍게만은 아니게 느껴졌을 것 같은데, 뾰롱이라는 친숙한 캐릭터가 중간에서 한 번 감정을 받아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림을 보고 순간 웃었다가 이어지는 글에서 생각보다 진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잘 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입시미술을 하던 시절 사람을 잘 그리지 못해 선택한 타협에서 뾰롱이가 만들어졌고, 대학에 간 뒤에도 방황은 계속되었다가, 그러다 SNS에서 만화를 그리며 많은 팔로워를 얻었지만, 군 복무 중 계정 해킹으로 그동안 쌓아온 것을 잃었다는 과정은 웬지... 허망하게 느껴지더군요. 특히 '팔로워 0'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부분은 단순히 SNS 숫자를 잃은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잘한다고 믿었던 것, 그나마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한순간에 잃은 뒤 다시 같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이후 취업과 인간관계에서 계속 흔들리고 마음의 병까지 겪었다는 내용을 보니 뾰롱이의 귀여운 표정이 오히려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이 만든 캐릭터가 아주 밝고 따뜻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어둡지, 그렇다고 지나치게 밝지도 않게 표현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뾰롱이의 위로가 무조건 "괜찮아, 잘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힘든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건네는 진정성 있는 위로의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모티콘에 서른 번 가까이 도전하고, 다시 팔로워를 모으고, 결국 10만 명까지 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마지막 성공만 보면 꽤 멋있어 보이는데, 이런 과정이 정말 오래 버틴 사람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책 후반에 나오는 "'그럼에도' 살아간다"라는 말도 그래서 거창한 응원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서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 안 풀리고 넘어지는 날이 있어도 오늘 할 일을 조금씩 이어가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작가에게는 그것이 그림이었고, 결국 그 그림을 계속 그린 시간이 지금의 뾰롱이를 만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뾰롱이가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작가 자신을 버티게 해준 존재였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귀여운 병아리였는데 이야기를 알고 나니 삐뚤빼뚤한 그 모습 자체가 왠지 더 정겹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제목처럼 '아직 그리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인생이 완성되어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고민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무언가 잘되지 않을 때 너무 빨리 결과부터 판단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성공보다 오늘도 자기 자리에서 하던 것을 계속하는 일... 생각보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여운 병아리 이야기인 줄 알고 펼쳤는데, 다 읽고 나니 정말 오랜기간 버틴 한 사람의 작업 일기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뾰롱이가 전하는 위로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