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과 전쟁 - 무기화된 화학 이야기
앨리스 러브조이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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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맨 처음 '필름과 전쟁'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영화 속 전쟁 장면이나 전쟁 기록 영화에 관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읽자마자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확 들더라구요. 이 책은 필름에 무엇이 찍혔는가보다, 필름이라는 물질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과정이 전쟁과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따라가는 책이었습니다. 음... 솔직히 이 관점은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필름이라고 하면 오래된 사진, 영화관, 흑백 화면, 약간의 낭만 같은 것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요즘도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면 괜히 더 따뜻해 보이고, 디지털 사진보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그런데 이 책은 저의 이런 감상적 이미지를 꽤 단호하게 걷어냈습니다. ^^ 필름은 단순히 추억을 담는 매체가 아니라 질산, 면화, 은, 망가니스, 우라늄 같은 광물 같은 원료와 화학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산업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장 먼저 기억에 남은 부분은 나이트로셀룰로스 필름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필름이 쉽게 불붙고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었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예전 극장 화재가 왜 그렇게 치명적이었는지 조금 실감이 났습니다. 이 물질이 들어간 당구공이 폭발하거나 드레스 단추에 불이 붙는 일까지 있었다는 대목은 약간 믿기지 않아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아름다운 이미지라고 부르는 것의 바탕에 이렇게 위험한 화학물질이 있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불편함을 야기했습니다. 코닥 공장의 배기 팬과 110미터 굴뚝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책에서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질산 증기를 배출했다고 설명하지만, 그 유독한 연기는 결국 공장 밖 어딘가로 나갔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보호'라는 말이 꼭 모두를 보호한다는 뜻은 아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공장 안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바깥의 공기와 주변 환경이 대신 위험을 떠안은 셈이니까요.

'한 그루의 나무 이야기'부분에서 '필름의 역사와 전쟁의 역사가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억하지만, 그 사진과 영상을 가능하게 한 필름산업이 전쟁의 다른 한쪽에 놓여 있었다는 점은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특히 벨기에령 콩고의 광부들, 라벤스브뤼크 수감 여성들, 히로시마의 시민들이 함께 언급되는 대목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필름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삶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 배상' 부분도 낯설었습니다. 필름과 그 원료가 점령군에게 사용되거나 전리품처럼 옮겨졌다는 설명을 보면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물질의 이동은 계속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보상이고, 누군가에게는 약탈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산업을 굴리는 재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읽는 맛(?)이 있다기보다, 읽고 나서 잠깐 멈추게 만드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핵실험과 낙진 이야기는 특히 이상하게 현실감이 있었습니다. 사진업계가 핵실험장에 카메라와 필름을 공급하면서도, 동시에 그 낙진으로부터 자사 제품을 보호하려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전쟁 기술의 발전이 사진 기술에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그 결과로 생긴 방사능은 필름 자체를 망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 묘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다시 인간이 만든 기록 장치를 오염시키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음...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필름, 화학, 군수산업, 핵무기, 환경오염, 식민주의 같은 주제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저처럼 영화나 사진의 낭만적인 뒷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으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낯섦 때문에 저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책은 읽을 때는 조금 불편하지만, 읽고 나면 쉽게 지워지지 않죠.

책을 덮고 나서 필름이라는 말이 전처럼 예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필름 사진이나 영화를 덜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물질과 노동, 산업과 전쟁이 있었는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이 말하려는 것도 그런 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기억하는 것들에도, 때로는 보이지 않는 비용과 폭력이 함께 붙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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