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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기원 - 우리의 뇌는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가
칼 다이서로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북라이프 / 2026년 1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슬픔이나 분노, 불안과 혼란이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뇌와 삶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끝까지 설득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줄 뿐입니다. "
'감정의 기원'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이 아마도 감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서'에 가깝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뇌, 신경회로, 기술, 데이터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거든요. 그래서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그 예상은 금세 빗나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은 감정을 설명하려는 책이라기보다는, 감정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끝까지 함께 바라보는 기록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남자'를 시작으로 제2장 '어느 정년퇴직자의 변신', 제3장 '외향인 그 여자, 내향인 그 남자', 제4장 '상처가 건네는 이야기', 제5장 '그들이 내 머리를 해킹해요', 제6장 '많이 먹거나 많이 굶거나', 마지막 제7장 '우리는 시작한 곳에서 종말을 맞는다'라는 주제로 마무리 하죠.
저자 칼 다이서로스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이지만, 이 책에서 그는 분석자라기보다 동반자에 가까운 태도로 감정을 바라봅니다. 눈물을 흘리지 못하게 된 남자, 하룻밤 사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 은퇴자, 자신의 몸을 해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청소년, 기억을 잃어가며 점점 세계에서 멀어지는 노인들.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차갑게 분류하지도,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삶이 어디서 무너졌고, 그 이후에도 무엇이 끝내 남아 있는지를 조용히 따라갑니다. 읽다 보면 '이걸 이렇게까지 따라가도 되나?' 싶은 순간도 있었고요.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망가진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아닐까?' 저자가 말하듯 고장이 난 회로는 오히려 원래의 구조를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의 극단적인 감정은, 사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안고 살아가는 불안이나 공허, 두려움이 확대된 형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읽다 말고 잠깐 책을 내려놓게 되는 순간도 여러 번 있었고요.
과학적 설명이 등장할 때도 인상 깊었습니다. 광유전학이라는 최첨단 기술이 소개되지만, 그 언어는 '통제'나 '정복'에 가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케스트라를 조율하는 지휘자에 대한 비유처럼, 조심스럽고 조율적인 방식으로 설명됩니다. 뇌를 이해한다는 것이 감정을 단순화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인정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며, 괜히 제 감정을 쉽게 설명하려 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오래 남았던 건 조증, 경계성격장애, 섭식장애를 다루는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때로는 낭만화하거나, 반대로 너무 쉽게 낙인찍어버리곤 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끝까지 그것들을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다룹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인간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계속 묻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과학서이면서도, 아주 깊은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답을 말하기보다는, 쉽게 단정하지 말라고요.
후반부에 등장하는 기억 상실과 노화의 장면들은 특히 조용히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모든 것이 하나씩 벗겨진 끝에 남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가장 원초적인 상태뿐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그렇게 집착하며 살고 있는 걸까?' 기억과 의지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관계와 감정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생각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감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감정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변화는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슬픔이나 분노, 불안과 혼란이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뇌와 삶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끝까지 설득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줄 뿐입니다.
'감정의 기원'은 뇌를 이해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너무 쉽게 이해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읽혔습니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 난 지금도, 이 책은 설명보다 질문으로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