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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진화 -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앞서갔는가
미하엘 슈미트잘로몬 지음, 이덕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이 책은 한 사람의 사상을 깊게 파고드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배치'해주는 책처럼 읽혔습니다. "
요즘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보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판단할지가 더 어려웠습니다. 확신에 찬 주장들이 넘쳐나는데도 오히려 길을 잃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각의 진화'를 집어 든 건, 이 책이 "현대 세계관을 만든 10인의 사상가"를 통해 답을 주기보다 생각의 방향을 교정해보자는 쪽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머리말 '머리는 혼자 생각하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총 10개의 장, 그리고 마지막 전망 '매를 향해_인류세의 인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1장은 '변화하는 것보다 영원한 것은 없다 _ 찰스 다윈과 진화의 발견', 2장 '발상의 전환으로 시공간을 뒤흔든다 _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자연의 법칙', 3장 '우주는 평화와 폭탄을 품고 있다 _ 마리 퀴리와 물질의 신비', 4장 '대륙과 함께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다 _ 알프레트 베게너와 판구조론의 발견', 5장 '우리는 우주의 티끌 한 점이다 _ 칼 세이건과 지구 너머로의 모험', 6장 '오직 지금의 삶만이 존재한다 _ 에피쿠로스와 의미 찾기', 7장 '이 세계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다 _ 프리드리히 니체와 도덕과의 작별', 8장 '우리에게는 사슬을 끊는 힘이 있다 _ 카를 마르크스와 사회의 발견', 9장 '우리는 오류를 통해 위로 올라간다 _ 칼 포퍼와 열린사회의 가능성', 그리고 10장 '모든 것은 진화로 이해할 수 있다 _ 줄리언 헉슬리와 미래의 인간'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나갑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다윈은 지식보다 먼저 양심의 고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가져올 파장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발표를 오래 주저했다고 했어요. 이 대목을 읽으며 '위대한 발견'은 천재성보다도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을 견디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 "우리는 창조물의 정점이 아니라 내일의 네안데르탈인"이라는 문장은, 자존심을 꺾는 대신 시야를 넓혀줬어요. 기술을 자랑할수록 오히려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이 겸손은 칼 세이건 파트에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우주의 거대한 어둠 속을 떠도는 고독한 알갱이"라는 표현을 읽고 나서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서로에게 친절해지는 쪽이 더 '합리적'일 수 있겠다는 감정이 남았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생각의 진화'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습관을 내려놓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반대 속에서도 앞으로 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방법’이라는 점도 인상에 남았습니다. 마리 퀴리의 장에서는 '재능'보다 '끈기'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부고 기사들이 그녀를 "극도의 끈기"로 기억했다는 문장은, 성취의 역사가 곧 지속의 역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어요. 게다가 그녀가 방사선 연구를 박사 논문으로 삼았고, 그 연구가 물리학의 기초를 바꿔놓았다는 흐름은 "작은 질문 하나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감각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베게너 파트도 비슷한 결을 남겼습니다. 그는 공격을 감정으로 받지 않고, 비판 일부를 수용해 모델에 통합했다고 했어요.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강한 주장'이 아니라 강한 수정 능력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태도는 포퍼로 이어지며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반박 불가능성이 강점이 아니라 약점이라는 깨달음은, 요즘처럼 단정이 쉽게 소비되는 시대에 특히 필요하게 느껴졌어요. "내가 옳다"가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를 품는 쪽이, 더 오래 가는 지성이라는 메시지처럼 읽혔습니다.
후반부의 철학자들은 제게 "생각의 뼈대"를 다시 잡아줬습니다. 에피쿠로스가 철학의 중심을 국가나 종교가 아니라 개인에 두었다는 대목은, '나의 삶'이 사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했어요. 니체는 더 거칠게 들어왔습니다. "모든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태도와, 이상이 현실을 보는 눈을 흐릴 수 있다는 경고는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생각을 맑게 만들었습니다. 마르크스의 문장도 오래 남았습니다. 인간을 "사회적 조건의 총체"로 본다는 관점은, 개인의 실패를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습관을 흔들어줬어요. 동시에 "그러면 나는 무엇을 바꿀 수 있나"라는 질문도 남겼습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어느 한쪽(개인, 사회)으로 결론을 급히 밀지 않고 렌즈를 여러 개 쥐여줬다는 점이었습니다.
줄리언 헉슬리의 "진화적 인본주의"는, 앞선 이야기들을 한 문장으로 묶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전통과 문화를 초월해 과학의 통찰에 방향을 맞추고, 개인의 완전한 발전을 진보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설명이었어요.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인본주의'가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에서 선택할 기준을 만드는 작업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저자 자체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진화적 휴머니즘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온 인물이라는 점도, 책 전체의 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고요.
'생각의 진화'를 다 읽고 나서, 저는 "정답을 얻었다"기보다 내 확신을 다루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다윈의 주저함과 포퍼의 반증 가능성이 한 줄로 이어지면서, 확신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감각이 남았어요. 세이건의 문장 덕분에, 논쟁의 기술보다 친절과 겸손이 더 강한 세계관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사상을 깊게 파고드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배치'해주는 책처럼 읽혔습니다. 정보가 많은 시대에 오히려 생각이 얕아지는 느낌을 받았던 분이라면, 이 책을 천천히 따라가며 "나는 무엇을 근거로 믿고 있었지?"를 한 번쯤 점검해보셔도 좋겠다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