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사생활 - 이토록 게으르고 생각보다 엉뚱한 프린키피아 6
알베르 무케베르 지음, 이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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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흔들리고, 자주 틀리고, 확신에 집착하는 이유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뇌의 기본 설정에 가깝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설정을 그대로 따를지,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볼지는 선택의 문제라는 점도 분명해졌습니다."

요즘 유독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잘 어긋난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같은 뉴스를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사실이 확인되어도 쉽게 입장을 바꾸지 않습니다. 저 역시 "왜 저렇게까지 확신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돌아보면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뇌의 사생활'을 읽게 된 건, 이 책이 그런 현상을 도덕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의 작동 방식 자체에서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총 2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가?'에서는 1장 '우리는 정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2장 '뇌는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거짓을 들려주는가?', 3장 '우리는 왜 그토록 자주 어림짐작하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나의 뇌, 타인의 뇌 그리고 세상'이라는 대주제로 4장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이자 적, 스트레스', 5장 '확신이라는 이름의 환상', 6장 '거짓말이 필요할 때: 인지 부조화', 7장 '내가 좌우할 수 있는 일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 8장 '뇌가 자주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지는 이유', 9장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거나 악마가 되거나: 맥락의 중요성', 마지막 10장에서는 '정신적으로 더 유연해지기 위한 기술'을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합니다.

이 책은 뇌를 '논리적인 판단 기계'로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뇌는 불확실성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 현실을 단순화하고, 때로는 다정한 거짓말까지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이 책이 ' 인지 편향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초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이원적 사고 모델'에 대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카너먼의 '직관 대 고찰' 모델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최근 연구들을 바탕으로 뇌가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 모델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복잡한 현실을 두 개의 범주로 나누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세상을 선과 악, 맞고 틀림, 옳고 그름으로 빠르게 나누고 싶어 하는 이유가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인지적 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이 편리한 만큼, 오해와 단절도 함께 만들어낸다는 점이 조금은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중반부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 존재인지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드러납니다. 특히 포러 효과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성격 묘사를 '나만을 위한 설명'이라고 믿게 되는 이유가 개성화 편향, 권위 편향, 선택 편향의 결합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성격 검사, 심리 테스트, 심지어 일부 자기계발 콘텐츠들이 왜 그렇게 강하게 설득력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속는다는 사실보다, 속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심리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방어적인 마음이 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통제'라는 주제로 생각을 확장합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과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 이 둘 모두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특히 과도한 내적 통제 위치를 지닌 사람일수록 완벽주의와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기 쉽고, 그 결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경직된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분석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균형점을 제시합니다. 세상이 전적으로 내 책임도 아니고, 완전히 내 손을 벗어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상황마다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환상'에 자주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확신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사고는 좁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남은 부분은, 자신의 믿음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제안이었습니다. 저자는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보다 "왜 그렇게 믿고 있는가"에 집중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판단에 신뢰 지수를 부여해 보라는 제안도 인상 깊었습니다. '나는 안다, 모른다'가 아니라, '나는 어느 정도 안다'라는 단계적 사고를 연습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방법은 단순한 사고 훈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확신을 내려놓는다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업데이트할 여지를 남겨두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뇌의 사생활'을 다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안심에 가까웠습니다. 내가 흔들리고, 자주 틀리고, 확신에 집착하는 이유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뇌의 기본 설정에 가깝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설정을 그대로 따를지,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볼지는 선택의 문제라는 점도 분명해졌습니다. 이 책은 "뇌를 조심하라"고 경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뇌를 이해하면, 조금 덜 휘둘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판단이 자주 충돌하는 시대에, 누군가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내 확신을 점검해 보고 싶어졌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천천히 읽어보는 경험이 꽤 의미 있게 남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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