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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미술관 - 모던 아티스트 10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5년 11월
평점 :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앞으로는 그림을 볼 때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왜 이 장면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를 제 스스로에게 묻는 관점을 가지게 될 것 같았습니다. "
요즘 미술은 예전보다 훨씬 가까워졌지만, 동시에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전시는 붐비고, 명화 이미지는 SNS에서 자주 보이는데도 막상 그림 앞에 서면 "그래서 이걸 어떻게 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휴머니즘 미술관'을 읽게 된 건, 이 책이 처음부터 "예술을 몰라도 괜찮다"는 말로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의 설명이 아니라, 미술을 뒤늦게 배운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건넨다는 점이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이론보다 감정, 연대기보다 인간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 요즘 미술을 부담 없이 만나고 싶어 하는 저와 같은 독자들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이 책은 근대 예술가 10명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소심한 은둔형, 금수저 출신 반항형, 행복추구 긍정형, 공사다망 야망형... 처음에는 이 분류가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오히려 화가를 이해하는 입구로 꽤 효과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 두 달 동안에도 수십 점의 그림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고통과 창작을 단순히 낭만적으로 연결 짓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뭉크의 그림에서는 "영혼이 방전되었을 때는 스스로를 치료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속삭임이 들린다고 표현하는데, 이 문장은 작품 해설이라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어요. 이 책은 화가를 위대한 천재로 띄우기보다, 불안하고 흔들리던 한 인간으로 먼저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마네, 드가, 세잔을 다룬 장에서는 예술이 단순한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과 태도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기대와 다른 길을 택한 마네의 조용한 저항, 뒤늦게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된 드가의 인생 전환, 파리에서 상처를 입고 고향 작업실로 돌아간 세잔의 반복적인 정물 그림까지... 이 이야기들은 작품 해설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감정의 변곡점처럼 읽혔습니다.
특히 세잔이 사과와 물병, 산 같은 일상적인 대상을 집요하게 그렸다는 대목에서는, "이걸로 어떤 새로운 예술을 그리겠다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 거창한 소재가 아니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일상에 머무르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 예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네와 르누아르를 다룬 부분에서는 미술이 반드시 고통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모네가 자신의 최고의 작품을 '수련'이 아니라 정원 그 자체라고 여겼다는 이야기는,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한 사람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며 "이 그림을 보면 행복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라고 묻는 문장은, 미술을 감정의 언어로 읽어도 충분하다는 허락처럼 느껴졌어요. 로댕과 클림트에 이르러서는 예술가의 사회성, 야망, 사생활에 대한 태도까지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사교의 중심에 서게 된 로댕과, 화려한 도시 속에서도 내성적인 삶을 선택한 클림트의 대비는, 성공과 명성 앞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낸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휴머니즘 미술관'을 읽고 나서, 미술을 더 잘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미술을 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대신 화가의 감정과 삶을 따라가 보자고 제안하는듯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림을 볼 때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왜 이 장면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를 제 스스로에게 묻는 관점을 가지게 될 것 같았습니다. AI와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이 책이 강조한 '휴머니즘'은 거창한 철학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술을 잘 몰라도 괜찮고,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이 위로처럼 남았습니다. 그림 앞에서 이유 없이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있다면, 혹은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천천히 읽어보는 경험이 꽤 따뜻하게 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