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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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내가 지금껏 소설에 대해 품고 있었던
모든 작위적인 생각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세상에 이런 언어를 통해서도 소설이 완성될 수 있구나.
세상에 소설도 영화처럼 각각의 캐릭터가 눈앞에 펼쳐질 수 있구나.
세상에 이렇게 사람을 시종일관 웃기면서도 굉장한 여운을 줄 수가 있구나.

 
세상에 이런 소설이 존재할 수도 있구나...


이 책은 한때 '독재'에 가슴 아파했던 수없이 많은 국가들의
민중들에게 보내는 더럽게 재밌는 헌사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전혀 그런 식으로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주인공은 오스카 와오.
'완벽한 낙오자'란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오스카 와오가 거기에 유일하게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오스카는 모든 걸 다 갖췄다(!)
몸은 뚱뚱하고 외모는 엉망이며 애니메이션, 특히 <아키라> 오타쿠다.
거기다가 여자는 더럽게 좋아하는데 외모+말빨의 완벽한 하모니로 인해
말을 걸기도 전에 여자가 먼저 도망치는... 뭐 그런 놈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뒷부분을 누구든지 대충은 예상은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형적인 '루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결국에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천사같은 여자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앚가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말이다.

 
... 그럼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앞서 말했다시피 이 소설은 '소설'이란 장르가 가지고 있는 
그 모든 클리셰를 거의 때려부수다시피 한 일종의 혁명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였다면 애초에 이 글은 쓰지도 않았고
이 책에 대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소란스러운 찬사는 벌써 개나 줬을 것이다.

 
오스카는 정말 이런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삶의 밑부분을 필사적으로 기어간다.
오스카의 누나 롤라 역시 외모만 뺀다면 오스카보다 하등 나을 것 없는 삶을 살며,
오스카의 할머니 라 잉카도 마찬가지다.
오스카와 롤라의 엄마는 말 할 것도 없고, 마약에 찌든 루돌포 삼촌 역시 마찬가지다.
  
 

오스카와 그의 가족들의 삶이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도미니카인이기 때문이다.
도미니카인들이 미신처럼 믿는 '푸쿠'의 존재가
나를, 그리고 내 가족들을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한다고 오스카는 생각한다.

 
한없이 우울한 이러한 상황설정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건
작가 주노 디아스의 환상적인 필력이다.
그는 결코 트루히요라는 더러운 독재자의 이름으로 얼룩진
도미니카의 현대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유쾌하고 흥미롭게 인물들에게 대입시킨다.

 
그러나 도미니카 현대사의 fact는 매우 처참해고 가슴 아파서
그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부분에서는 소설의 이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도 순간순간 가슴이 시리기도 하지만
오스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 개인의 눈물나도록 웃기고 눈물나도록 슬픈 이야기와
오스카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독재 국가 치하 민중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이야기가 절묘한 밸런스로 어우러져
도저히 읽는 이로 하여금 책에 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점이다.

 

나는 진심으로 주노 디아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차라리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도 부럽고 서글프다.
'가슴 아픈 현대사'라 하면 전 세계의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우리나라에
이 작품 만큼 재밌고 유쾌하고 깊이있게 현대사를 쓸 수 있는 작가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어쨌건 한마디로 이 책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의 느낌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 지금 뭔가 엄청난 걸 본 것 같다."

 

 

ps1. 한가지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게 이 책이 이렇게 굉장한 몰입도를 선사했던 이유는
오스카 와오라는 주인공의  '설정' 때문이었다.
오스카는 뚱뚱하고 못생기고 애인이라고는 없다.
그를 보는 나의 마음은 첫번째는 너무 딱한 '조건'을 타고 났다는 것에 따르는 동정심,
두번째는 오스카보다는 내가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우월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어느 부분에선 '행복해지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음 속 한켠에서는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바라진 않았다. 
만약 내용이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뻔한 내용'이라는 걸 떠나서
내가 오스카를 바라보면서 느끼고 있던 동정심과 우월감이 박탈당하기 때문에
그 순간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품었던 재미와 몰입도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 처럼 이 작가는 보통이 아니다. 주노 디아스는 영리했다.
그는 인간의 이런 간사하고 역겨운 마음을 끝까지 '갖고 놀 줄' 알았다.
끝까지 읽어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ps2. 그리고, 이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커다란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번역이다..!!!
유명한 [올리버 키터리지]를 번역한 권영미 씨인데 직접 작가와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번역에 대한 완성도를 높였다고 한다. 그 덕택에 정말 '죽이는 책'이 비로소 완성됐다.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약간 순화된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100점 짜리 번역이 아닐까?
적어도 번역이 발 번역이라서 작품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따위의 말은 듣지 않을테니.
훌륭하고 생생한 번역 덕택에 좋은 작품을 만끽할 수 있어서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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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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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역사학자 한홍구는 '민생단 사건'을 두고
그 어떤 것보다 소설이 잘 어울리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낭만성 때문이 아니다.
소설이기에, 픽션이기에 그 어떤 실제적인 '비극'도 하나의 잘 짜여진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의 환상성에 기인하는 말일 것이다.
 

민생단 사건이 소설에 적합한 이유는
아니 소설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제국주의의 탄압 아래서
자주독립을 갈구하고 이상적인 세계라는 하나의 목표를 바랬던,
그 비극의 시절의 정중앙을 관통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직접 내 옆의 동지를
제 손으로 죽여 없애야만 했던 초현실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밤을 노래한다]는 민생단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민생단을 다룬 소설은 최초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민생단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음' 투성이었다.
민생단 사건에 대해 처음 알았던 대학 시절에는
이와 관련된 소설은 커녕 민생단에 관련된 자료조차도
왜 그로톡 찾기가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책을 읽기 전에도, 읽은 후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지금껏 우리는 민생단 사건과 같은 '가슴 아프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이 주제에 대해 문학적 결과물은 커녕 학술적인 연구조차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직까지도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는 썩은 종자들 덕택에
여전히 너덜너덜한 걸레짝처럼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레드컴플렉스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가슴 아픈)
문학이란 거룩한 '예술'의 이름으로 표현하는 건
불경스러운 죄가 되는 일이기 때문일까?


이해가 안 되지만 어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둘일까.
어쨌건... 20세기에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비극이
한 세기가 지난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소설로 태어났고,
그 소설을 그린 주인공은 다름아닌 김연수 작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미 팩트 자체로도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는 사건이지만
김연수의 손 끝 아래에서 펼쳐지는 문장들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소설은 지독한 공포와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그 시대와 상황, 현장과 감정을 묘사하는 말들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는 지옥과도 같았던 역사의 한 페이지...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근 몇 년 간 국내 소설은 꺼렸다.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물론 현기영의 [누란]같은 극히 드물게 읽었던 몇몇 작품들은 있었지만)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내 기억에서 '국내 소설'이란 문학 분류는 삭제된 채로 지냈던 몇 년이었다.
 

김연수의 [밤을 노래한다]는 정말이지 몇 년만에 마음 먹고 읽어 본 국내 소설이다.
우리나라의 언어로 표현한 우리의 일부분은 그렇게도... 슬펐다.
우리나라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존재할 수 있었던 한은
김연수라는 작가의 손 끝을 통해 눈부신 아름다움과
눈물나는 슬픔으로 그렇게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국내 소설 가운데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과
진보적인 정권이었건, 보수적인 정권이었건
이념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하지 못했던, 아니 애써 외면하고 무시했던 '그것'을
김연수는 자신만의 언어로, 소설이란 매개체를 통해 성취했다.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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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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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국내 소설에 대한 흥미가 다시금 생겼다.
국내 소설이라고 해서 문체나 주제, 분위기가 다 똑같은 건 아닐진대
고작 한 작품 읽고 '국내 소설'이라는 분류상 거대한 그룹 전체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고 말하는 게 조금 우습고 앞뒤도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어쨌건 우리나라의 언어로 말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선택한 작품이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김영하의 작품을 하나도 읽은 적이 없다.
그 유명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도 [퀴즈쇼]도
[오빠가 돌아왔다]도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책의 주제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다)
 

책의 주인공 기영은 북한 간첩이다.
이 사실은 비교적 책의 초반에 나타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넌지시 '간첩'이라는 정체가 밝혀지는 타이밍, 이 대목이 참 흥미로웠다.
 

그러나 기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니다.
(잠깐, 진짜 당신은 아직까지도 간첩하면 흉칙한 괴물의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내가 있고 딸이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다.
(역시 남파된 간첩이었던)그의 직속상관이 북한의 지령에 의해 북송되어
숙청당하고, 바로 밑의 부하였던 기영 역시 생포되어 북송될 위기에 처했지만
가까스로 그 위험을 넘기고, 기영은 그렇게 남한에서 남한인 코스프레를 하며
유령처럼 살아갔다. 북한에서조차도 기영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기영에게 십 몇 년만에 '지령'이 내려온다.
암호로 되어있는 그 지령을 보고 기영은  
"북한으로 넘어오라"는 명령으로 생각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인상 깊은 건, 간첩의 시각으로 본 우리나라의 80년대의 모습과,
간첩의 시각으로 본 북한 체제의 모순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물론 간첩이라는 극중 캐릭터를 통해 전달하는 작가 자신의 생각이겠지만.
제3자의 시각으로 본 우리의 모습과, 당사자의 시각으로 보는 타지의 모습.
어떻게보면 상당히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법 하지만,
(북한 정권과 남한 정권이 겉으로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있음으로 인해서 체제 공고화를 더욱 더 다질 수 있었던
70~80년대의 지독한 패러독스는 모두가 다 알고 있었던 사실 아니던가)
생생한 묘사와 무디지 않은 통찰력 덕택에 그리 통속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소재 자체는 매우 흥미롭지만,
결말로 다가갈수록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이 부분이 안타깝다.
기영의 아내 마리의 이야기는 공감도 잘 가지 않을 뿐더러
너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이 불필요할 정도로 많아서 불편했다.
 

그리고, '쿨한 캐릭터'는 국내 소설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인가?
'쿨함'을 제외하고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는 건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빠짐 없이 등장하는 현실성 제로의 캐릭터는 여기서도 여전하다.
(대체 대학생 두 명과 쓰리썸을 하는 40대의 기혼 여성이 어떻게 쿨할 수 있단 말인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리 인상 깊은 책은 아니다.
흥미로운 소재가 너무나 아쉽다.
만족하지 못하는 건 작품 자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밤은 노래한다]를 보고 너무 눈이 높아졌던 탓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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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거 2011-01-28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방금 빛의 제국을 읽고 리플을 답니다.
신기하게도 저도 세계문학만 읽다가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국내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케이스인데 저랑 계기가 비슷하신 분을 만나서 참 반갑기도 하네요 ㅋㅋㅋ 그 책을 다 읽고 도서관에서 빌린 게 바로 이 소설이라서요.
저도 글쓴분이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흥미로운 소재이긴 하지만 막상 결말 부분은 너무 적게 서술되어 있지 않나 싶은 ㅠㅠ 마찬가지로 마리의 이야기도 글쓴분이랑 같은 느낌이었구요.
그래도 책도 흡입력이 있고 나름 인상깊은 소설이었네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이 '재미'에 있다면 이 소설은 100점 짜리 소설이다.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이 '깊이'에 있다면 이 소설은 100점 짜리 소설이다.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이 '여운'에 있다면 이 소설은 100점 짜리 소설이다.

 
야구로 치자면 이 소설은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의 역전만루홈런이고,
농구로 치자면 종료 휘슬과 함께 터진 버져비터이며,
축구로 치자면 후반전 인저리 타임 때 터진 35m 역전 중거리슛이다.
 

100점 짜리 소설.
 

세상에 이보다 주관적인 말이 또 있을까 싶은 이 단어를
거침없이,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소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일단 이 소설은 미친듯이 재밌다.
그것이 이 소설이 100점 짜리인 첫 번째 이유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야구를 싫어한다.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야구를 싫어하는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야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축구를 사랑하는 100만분의 1의 애정도 야구에 대해 갖고 있지 않으며,
야구의 룰도 모른다. 그저 한국 프로야구 팀에 누가누가 있다, 라는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년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이 소설만큼은 눈물이 날 정도로 재밌있게 읽었다.
비록 야구의 규칙도 모르고, 그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는 나지만
삼미슈퍼스타즈를 추억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소재보다도 흥미로웠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독창적인 글솜씨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겉멋 들이지 않고 이렇게 글을 맛깔나게 쓰는 국내 작가는
천명관 정도를 제외하곤 나는 도통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 시절을 추억하는 회고담에 그쳤다면
이 소설은 100점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수필에 머물었을테지.
하지만 이 소설은 유년기 삼미 슈퍼스타즈이 강렬한 추억 어딘가의 기억점을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사회적 모순을 들여다보는 장장 10여 페이지에 달하는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꼴찌 구단과 사회를 하나로 묶는 작가의 솜씨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절묘하기 때문이다.
 

'나'는 삼미를 통해 그 어린 시절 OB베어스 어린이 팬클럽 앞에서
인생 처음으로 굴욕이란 감정을 느꼈고,
삼미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과 자살이란 충동적 감정을 느꼈다.
단지 프로의 세상에 뛰어든 아마추어를 사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야구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움직임, 그 절묘한 통찰력.
이것이 이 소설이 100점 짜리일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다.

작가 박민규는 삼미의 기억을 '현재'까지 끌어올린다.
통속적인 소설들이었다면 '현대 생활에 찌든 가장이
삼미 슈퍼스타즈를 좋아한 옛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정도에서 끝났을 이야기를, 박민규는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나'를 바닥까지 떨어뜨려놓고, 어린 날 '나'의 별이었던 삼미를 통해 '구원'을 얻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삼미는 메시아적인 존재가 아닌, '삶의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결성했다는 것 말고는
'나'의 사회적 위치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
단지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소한 생각의 전환 정도를 제외하고 말이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비록 사회적인 나의 위치를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단순히 사회적인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더 큰 '재산'을 얻었다. 
이 얼마나 진부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이러한 진부함이 여느 이야깃거리들과 다르게
사람들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여운'을 줄 수있는 이유는
이 이야기는 그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회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유없이 멸시와 조롱을 받아야 했던 한 어린이(=우리)의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나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가슴 속에 나조차도 모르는 '삼미'라는 낙인을 달고 살았다.
'삼미'는 우리 몸뚱아리의 일부였고,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당연했겠지. 중산층이란 허울 좋은 담론을 만들어내어
개같이 일하고 쓰러질 때까지 일해도,
그의 반에 반도 노력하지 않는 '그들'에 의해 
고작 '중'이라는 평가 외에는 받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 마음 속의 '삼미'는 꾹꾹 눌러져 있을 수밖에 없었을테니.

 
이건 소설 속 조성훈이 '나'에게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교리를
설파했던 것 만큼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아니다. 아니 맞나? 모르겠다.
어차피 세상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음모론' 만큼 허무맹랑한 거 아니었나?

 
이것이 내가 이 작품을 100점 짜리라고 생각하는 세 번째 이유다.
그게 나와 같은 생각이건, 다른 생각이건 어떤 식으로든
이 소설을 읽으면 처음의 유쾌함과는 다르게 마지막 장을 덮을 땐
그 누구라도 무엇인가가 잔상처럼 남을 것이다. 

 
이 글의 모든 부분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몇 시간이 됐건, 며칠이 됐건, 몇년이 됐건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지.

 
이정도면 100점 짜리 소설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나?

 
ps. 주관적인 평가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내가 읽은 최고의 성장 소설 중 하나다.
난 이 소설을 읽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읽었을 때만큼의 깊은 충격을 받았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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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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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재밌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책들을 보다보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들,
즉 틈틈이 남아있는 책의 분량을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며
언제 끝나지? 라는 생각과 함께 초조하게 결말을 기다리는,
그런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술술 막힘없이 읽힌다.

 
또한, 이 책의 소재는 무려 '프로이트''융'이다!
그 명성과는 달리, 혹은 그 명성에 걸맞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비해서
그의 개인적인 사생활은 많은 부분이 베일이 쌓여져 있는데
작가 제드 러벤펠드는 그런 프로이트의 '사생활'과 그의 '이론'을 책의 소재로 내세웠다.
그것도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오묘한 스승-제자 관계였던 카를 융과 함께 말이다!
 

이 정도면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이론이 정립된지 100여 년이 지났음에도 비전문가들에겐 여전히 신비한 세계인
'정신분석학'을 가운데에 두고, 실존인물이었던 프로이트와 융이 나오며
소설의 주된 내용은 미스테리 스릴러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아쉽다.
일단 최고의 소재거리인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내용과
소설의 주된 내용인 살인사건에 대한 조화가 매끄럽지 못하다.
즉 두 가지의 이야기가 따로 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둘이 실존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작가는 프로이트와 융을
직접적으로 사건의 중심부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주인공 '나(영거)'를
피해자 담당 의사 역할로 사건의 중앙에 배치시켜 놓고
이 사건에 대해 프로이트에게 조언을 받는 형식으로
소설의 주된 테마와 실존 인물들을 매듭지어 놓는다.

 
물론 작가로서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겠지만,
그만큼 이 소설은 리얼리티와 픽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즉, 프로이트와 융, 브릴, 페렌치 등 실존 인물들 위주로 내용이 진행될 때와
영거, 리틀모어 등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 위주로 내용이 진행될 때의 괴리감
(그것이 분위기든 리얼리티든 재미든 뭐든 간에)이 심하다는 게
이 소설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흥미진진한 헐리웃 스릴러물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디스커버리 채널로 돌린 느낌이고,
익스트림 서프라이즈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출발비디오여행으로 화면이 넘어간 느낌이다.


메인 사건의 스릴러 부분 역시 나쁜 정도는 아니지만
결말에 다다를 땐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분량의 소설 치고는
허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소설 내내 부자연스러웠지만)
프로이트와 융 등의 실존 인물들과 가상의 픽션이 결말에 이르러서는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조화가 될 것이라고 책 읽는 내내 생각했던 걸
상기해보면 결말 부분의 매력이나 임팩트, 깊이는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단숨에 읽은 이유는 과연 이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결론이 날까?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프로이트와 융이 등장한 최초의 소설이라는 독창성에 끌려서
이 소설을 집어들었기 때문에 많은 실망을 했었지만,
정신분석을 소재로 한 그럭저럭 재밌는 스릴러물
(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굉장히 밝지만)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참, 그리고 이 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그 어떤 이론서들보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읽다 보면 전혀 어렵지 않은 단어와 표현들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성과는 오히려 '소설'이라는 분류 안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가치보다
100만 배는 더 뛰어나다고 본다. 의외의 발견이다!

 
ps. (당연하게도)이 책은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이 책은 헐리웃 장사꾼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부분에서 '영화와 같은 상황묘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인 영거와 리틀모어의 강 밑 탐사 때!)
영화화하면서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부분은 엄청나게 생략되겠지...?
[셔터 아일랜드]를 보고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를 과연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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