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성공회대 역사학자 한홍구는 '민생단 사건'을 두고
그 어떤 것보다 소설이 잘 어울리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낭만성 때문이 아니다.
소설이기에, 픽션이기에 그 어떤 실제적인 '비극'도 하나의 잘 짜여진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의 환상성에 기인하는 말일 것이다.
 

민생단 사건이 소설에 적합한 이유는
아니 소설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제국주의의 탄압 아래서
자주독립을 갈구하고 이상적인 세계라는 하나의 목표를 바랬던,
그 비극의 시절의 정중앙을 관통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직접 내 옆의 동지를
제 손으로 죽여 없애야만 했던 초현실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밤을 노래한다]는 민생단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민생단을 다룬 소설은 최초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민생단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음' 투성이었다.
민생단 사건에 대해 처음 알았던 대학 시절에는
이와 관련된 소설은 커녕 민생단에 관련된 자료조차도
왜 그로톡 찾기가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책을 읽기 전에도, 읽은 후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지금껏 우리는 민생단 사건과 같은 '가슴 아프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이 주제에 대해 문학적 결과물은 커녕 학술적인 연구조차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직까지도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는 썩은 종자들 덕택에
여전히 너덜너덜한 걸레짝처럼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레드컴플렉스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가슴 아픈)
문학이란 거룩한 '예술'의 이름으로 표현하는 건
불경스러운 죄가 되는 일이기 때문일까?


이해가 안 되지만 어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둘일까.
어쨌건... 20세기에 일어났던 믿을 수 없는 비극이
한 세기가 지난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소설로 태어났고,
그 소설을 그린 주인공은 다름아닌 김연수 작가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미 팩트 자체로도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는 사건이지만
김연수의 손 끝 아래에서 펼쳐지는 문장들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소설은 지독한 공포와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그 시대와 상황, 현장과 감정을 묘사하는 말들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는 지옥과도 같았던 역사의 한 페이지...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근 몇 년 간 국내 소설은 꺼렸다.
거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물론 현기영의 [누란]같은 극히 드물게 읽었던 몇몇 작품들은 있었지만)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내 기억에서 '국내 소설'이란 문학 분류는 삭제된 채로 지냈던 몇 년이었다.
 

김연수의 [밤을 노래한다]는 정말이지 몇 년만에 마음 먹고 읽어 본 국내 소설이다.
우리나라의 언어로 표현한 우리의 일부분은 그렇게도... 슬펐다.
우리나라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존재할 수 있었던 한은
김연수라는 작가의 손 끝을 통해 눈부신 아름다움과
눈물나는 슬픔으로 그렇게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국내 소설 가운데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과
진보적인 정권이었건, 보수적인 정권이었건
이념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하지 못했던, 아니 애써 외면하고 무시했던 '그것'을
김연수는 자신만의 언어로, 소설이란 매개체를 통해 성취했다.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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