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해 열림원 이삭줍기 5
보리스 필냐크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글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무슨 이유로, 기록을 남기는 것일까? 법정 기록, 판례법, 일기, 민요, 연대기 등의 다양한 기록들이 녹아들어 하나의 얼굴을 형성한 이 글을 읽는 내내 들었던 의문이다. 위에 언급한 피상적인 물음 이외에도, 독자라는 위치에 선 내가 기본적으로 묻고 싶었던 것은 작가인 필냐크는 대체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며 어째서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냐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필냐크의 <벌거벗은 해>는 상당히 읽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에는 등장 인물과 플롯에 중점을 두기 마련이다. 주인공에게 몰입하여 그의 시선으로 사건을 경험하고 느끼며 책장을 덮었을 무렵에는 좋은 쪽이든 그렇지 않은 간에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쉽게 몰입되거나 자신을 투영시킬 수가 없다. 작가가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등장 인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어떠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작스레 낯선 인물이 난입하는 등 시간의 흐름이 일정치 않으며 장 마다의 표현 방식이 틀리다. 필냐크는 수동적인 독자를 거부하고, 따라서 독자는 글 속에 나타난 관점들을 스스로 재구성해야만 한다.

이것은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 이후의, '죽음이 삶이나 출생보다 더 자연스러운' 시절인 1920년의 이야기이다. 제정 러시아가 참전했던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고 나서 2년 반, 1917년의 2월 혁명이 일어났고 300년 간 이어져 온 러시아 왕조는 붕괴되었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가치관이 혼란되는 등, 이전의 시간이 가속화한 그 즈음에 살던 인간들은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 들였을까.

제정 시대에 귀족이었던 사람, 무정부주의자, 집시, 분리파 교도, 볼셰비끼, 그리고 이름없는 민중들이 수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필냐크는 혁명에 대한 여러 관점만을 보여줄 뿐 성급히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나의 관점, 즉 볼셰비끼가 주가 되는 그간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혁명이라는 사건을, 민중 그 자체를 통해서 바라본다. 왕조의 타파를 주장하며 봉기한 볼셰비끼와 민중의 유리. 작가는, 인간의 본능과 에너지를 역사의 구심점으로 보았다. 민중은 혁명과 무관하게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태고적부터 러시아 땅에 살았으며 계속 그 터전 위에서 생활해 갈 것이다.
러시아는 독특한 나라다. 본격적으로 문학 작품이 씌어진 것은 17세기 말부터이다.

똘스또이나 도스또옙스끼, 고골 등이 같은 시대에 등장하고 러시아 정교와 민간 신앙이 혼합되어 있는 러시아인의 정신 세계는 냉전동안 닫혀 있었던 만큼, 매력적이다. <벌거벗은 해>는 그러한 다양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빛에 비친 얼굴은 음영이 진다. 그것은 단순히 매끄럽지 않다. 결국 필냐크는, 혁명이라는 얼굴에 비친 주름살 하나하나를 뒤적여 보고 얼굴 전체를 조망하고 러시아의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 글을 남긴 것이 아닐까.한 마디 덧붙이자면, 번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에서는 러시아의 민요가 자주 등장하며 발음을 이용한 언어 유희가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번역이라는 작업의 체에 걸려 이 음악적인 소설이 퇴색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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