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이 많았다. 공기는 후끈했다. 방사선 모양의 도시는 수많은 다리를 껴안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 냄새를 풍기며 건물들은 이야기를 건네왔다. 그것이 파리였다. 땀이 쉴새없이 흐르던 작년 여름, 파리에서 보았던 건 바로 교차로였다.
소설 속의 '나'는 '우연히' 도라 브루더라 불렸던 어떤 소녀의 실종 기사를 읽고 그녀를 뒤쫓게 된다. 나치 점령 하의 파리에 살았을, 유태인이었던 열 다섯살 난 여자 아이.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단지 내가 알고있는 거리에 오십 여년 전에 존재했던 그녀의 흔적을 쫓으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어째서 그녀인가? 아니, 무엇보다 그는 왜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사라져 버린 소녀를 찾고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문학이 그렇듯, 소설의 화자는 작가의 분신이다. 모디아노의 경우, 글 속에 나타난 자전적 성향은 더욱 짙어 여기저기서 드문드문 빼꼼히 그가 얼굴을 내민다. 도라 브루더에서 화자는 작가인 '나'이다. 그러나, 모디아노와 동일 인물은 아니다. '나'는 도라와 함께 사라져 버린 그 시대의 이름없는 어떤 사람이다.
출발은 한 소녀였다. '나'는 도라가 걸었을 거리를 걷고 살았을 집을 방문하고 그녀의 생각을 가늠해 보며 나름의 가설을 만들어 간다. 사진 몇 장과 문서 상에 기록된 몇 줄 만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짤막한 신문 기사 속의 소녀는 점점더 불어나는 정보와 더불어 아버지로, 다른 소녀들로, 여인들로, 작가들로 분열해 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유년 시절과 조우하며 그 기억은 얽히고 설켜든다. 하지만, 사실 찾고 싶었던 건 정말은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모디아노의 주인공들은 항상 누군가를 찾고있다. 그것이 누구이든 간에, 현재는 부재한다. 그들은 기반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소설 역시 제일 앞 장에 파리 지도가 나와있다. 무수한 길로 이루어진 공간, 그들은 길을 잃었다. 유태인인 도라, 그리고 '나'. 나치 하의 파리, 숫자로 헤아려질 뿐인 유태인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연행되어 아우슈비츠로 사라졌다. 지금 '나'의 아버지는 없다. 과거, 그 존재의 근원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모디아노의 작품이 꾸준히 추구하는 테마는 바로 그 부재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불가능한 작업, 막연한 가설 속에서 그럴싸한 도라의 행적이 탄생한다. 그 속에서 '나'는 자신의 과거 또한 얼마간 찾게되며 드디어, 방황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밟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신을 알아가는 것,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실종된 개개인을 찾아가는 게 그의 문학적 목표라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생각은 아닐 터이다. 그것이 진정한 작가의 임무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