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구판) 9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을 글을 읽고서 그것을 이해한다. 이 간단한 문장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표면적인 단순함을 훨씬 넘어서는 실로 복잡 다단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어떠한 사건을 접할 때에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과 감정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젼에서 동일한 뉴스를 목격했을 때에도, 각각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몸담은 공간에 의거하여 견해라는 것을 나타내기 마련인 것이다.

자, 당신이 텔레비젼에서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를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는 개 한마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하자. 당신은 볼품없는 털을 가진 그 갈빛(혹은 잿빛이거나 다른 색깔일 수도 있다.)의 개가 바싹 마른 몸(혹은 터질 듯이 살찐 것일 수도 있다.)으로 무언가를 향해서 (혹은 목적없이) 쉴새없이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어떠한 생각을 할까? 당신이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고있다는 사실로써도 이미 '체'는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가 잡고있는 각도에 의해, 그 당시의 빛의 반사 정도에 의해, 아니면 기자가 전하는 말에 의해서, 일정하게 걸러진 사실에다가 더불어 당신의 입장이라는 또 하나의 체로써 걸러서 받아 들이게 된다.

이 짤막한 소설, 카롤린 라마르슈의 <개의 날>에서는 여섯명의 목격자가 그 사건을 전하고 있다. '버림 받음'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서. 떠나버린 아내를 대신해서 끊임없이 가상의 가족을 상상해 내는 트럭 운전수, 떠나버린 여신자를 찾아 헤매는 노신부, 어릴 적 버림받은 기억으로 모든 사람들을 버릴 수 밖에 없는 미녀, 호모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절연 당하고 직업에도 외면당한 청년, 남편의 죽음으로 버림받은 과부, 어머니의 사랑을 잃고서 폭식증에 걸린 처녀. 그들은 자신들의 '버림 받은' 기억으로 맹렬히 질주하는 개를 바라본다. 그 개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그 사건을 접한 모든 사람들이 이들처럼 그 개가 '버림 받아' 달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섯명의 목소리는 작가인 라마르슈를 통해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전개되고 있다. 이 소설의 뛰어난 점은 한명의 작가가 여섯가지 에피소드를 총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리즘을 통해서 개개의 삶의 단면을 보여줄 뿐더러 일종의 결론에까지 이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타인에 의해 강제된, 그 타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간에 상처 입어 고독하게 된 각각은 그 개를 통해 자신을 돌아다보고, 어떤 이는 진단하기만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등의 다양한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프리즘을 들어 햇빛에 비춰보자.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빛깔은 확연하게 달리 나타날 것이다. 똑같은 것을 보고서도 다르게 받아 들였던 등장 인물들처럼, 우리 또한 이 소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싸안을 것이다. 인생을 자신만의 것으로 꾸려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타인의 삶의 단면에 관해서 경직되지 않은 자세를 가지는 것 또한 자신을 윤택하게 하는 방향이 아닐까? 또다른 '버림 받아 고독한' 존재가 생기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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