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Mr. Know 세계문학 33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블레이드 런너'라는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설사 보지는 못했더라도 이런저런 경위로 제목이나마 접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음울한 비와 함께 노래하는 영화 속 미래 가상현실은 당신의, 나의,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무채색으로 한켠 두켠 칠해 나간다.

SF? 이 단어를 들은 당신의 얼굴은 어떻게 바뀔까? 흔히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알려져 있는 (혹자는 Science Fantasy, Speculative Fiction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것은 때때로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 외면해 버리는 반응을 보게 하는가 하면 (우리 부모님의 경우이다.) 얼굴이 빨개져 가면서까지 열변을 토하는 (혹은 호흡 곤란을 동반하는) 상태를 몰고 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SF가 과연 무엇이길래?'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은 어떠한 명쾌한 답변을 (슈퍼 컴퓨터가 수초만에 간단히 내어놓는 마냥) 제시해 줄 수 있는가?

글쎄, 개인적인 견해로는 (당신이 이것에 대해 발끈해서 화를 낸다거나 만면에 웃음을 띄고 끄덕이든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상상력이 결여된 공간이라고 할까. 소설 속의 사회가 유토피아적이든지 디스토피아적이든지 간에 그 곳은 지독히 무상상적이다.

상상력. 이것에 대해서 자각하고, 갈고 닦거나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만약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별로 흥미진진하지 못한 이 감각이 위협 받는다면? '자, 오늘부터 당신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란 선고를 받게 된다면?

스뚜르가츠키 형제의 매혹적인 소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에서는 이것이 현실(우리에게는 하늘에 떠있는 별만치 머나멀지만)로써 펼쳐지고 있다. 밀랴노프를 위시한 등장 인물들은 미지의 힘(우주의 항상성이라 이름 붙여진)에 의해 자신들의 상상력을 박탈당할 (이 '박탈'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 의해 그러하게 된다'는 수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요즘의 시대란 자진해서 그것을 원하는 경향을 띄지 않나 싶기도 하다.) 위기에 처한다. 처음에는 물질적이거나 지위적인 회유로, 그 다음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으로, 나아가서는 가족들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이르는 거대한 음모로써 말이다.

우주의 항상성이 그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단지 등장 인물들의 추측상에서 불명확하게 넌지시 비춰질 뿐이다. 사실 이것은 중요치 않다. 많은 독자들이, 이것을 스딸린 시대의 탄압이라든가 억압에 의해 설명하고 공감한다. (이 형제 또한 그러한 연유로 러시아 문학사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시대에 우리의 상상력을 얼마만큼이나 보존시키고 확장시켜 나갈 수 있나 하는 점이다. 많은 등장 인물들이 결국 그 힘에 굴복하고 (표면상은 그렇지만, 소극적인 반항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베체로프스끼 홀로 투쟁을 계속해 간다. 그러나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아직 10억년이 남아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다.

에일리언이라든지, 슈퍼맨 등이 등장하지 않는 (게다가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시대의 레닌그라드이다.) 이 SF 소설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더욱 그 현실을, 공간을 사실적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 나에게 아직 상상력이 남아 있음을 감사하면서, 그것을 무기로 독특한 제목의 이 공간에 다시 한 번 뛰어들어 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