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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 평소, 일본 문학에나 힐끔이던 나로써는 전혀 생소한 인물일 뿐더러 책 한켠에 조금은 으스스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녀의 사진은 대체 어떠한 깜찍발랄한(사진 속 흑백의 조화가 빚어내는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아름다움처럼) 이야기를 선사해 줄 것인가 하는 기대감에 사뭇 나를 설레게 했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그녀는 이 사진만큼이나 괴기스런 입담으로 나에게 기대치 않은 공포를 선물했던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유령과 같은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 때때로 인간을 휩쓸어 버리는 재해나 재앙들? 아니면 자신을 억압하고 부정하는 타인의 폭력? 이러한 갖가지 공포들은 충분히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일 게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서 연유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공포는 더할나위 없이 가장 악질적이고 지속적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일 뿐더러 한 개인을 휩쓸어 버리고, 종말(혹은 죽음)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억압하고 부정하며 토끼 몰듯 자신을 궁지로 이끈다. 잊을만 하면 잘못 걸린 전화가 오듯 문득문득 떠오르고, 행복한 기분이 들 때면 물에 검은 잉크가 퍼져 나가듯 서서히 기분 나쁜 눈초리로 잠식해 오는 것이다.
우리 주인공 에밀 또한 평생을 그 공포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죽였어. 어쨌든 그건 분명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그 안의 무엇인가는 이미 예전의 빛을 잃고 바래 버렸다. 그는 자신이긴 하나, 동시에 더이상 자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어둠은 있다. 아멜리 노통은 이웃집 남자의 방문이라는 일상(이 소설에서는 특이한 형태로 표출되는)적인 소재로, 인간의 내면을 무서우리만치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감추어 보아라! 나는 그것들을 파헤쳐 주리라!'
알공달공 펼쳐지는 전원 수채화 같은, 늘어지는 동화의 초반부에 손을 떼지 말기를. 예측 가능한 결말은 당신을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잔혹한 세계로 안내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