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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김기현 외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아들이 질문을 한다. 그것도 정색을 하고 묻는다. 결코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아버지가 대답한다. 역시 정색이다. 쉽지 않은 질문들이니 그 대답 역시 쉽지 않았으리라. 즉문즉답이었으면 중구난방(衆口難防)이 될 법한 내용들인데, 이들은 필문필답으로 불필요한 논쟁과 곁가지들을 가능한 잘라냈다. 아날로그 식 편지의 장점을 극대화한 셈이다.
우선 형식이 눈에 띈다. 물론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 자체는 무수히 많은 책에서 보아왔던 전형적 형식의 하나이다. 그러나 누가 질문하고 누가 대답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가? 이 책의 공저자 김기현과 김희림은 부자지간이다. 대답하는 사람 김기현은 목사요, 인문학적 책읽기와 글쓰기로 기독교적 질문들에 대답하려는 변증가다. 그의 대답은 논쟁에 대해 솔직하며, 대답에 있어 겸손하다. 지나친 단순화나 무례한 현학을 거부하면서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공을 들여 설명한다. 그래서 그의 대답은 공감이 가고 믿을만하다.
질문하는 사람 김희림은 그런 김기현의 아들이요 현재 고 삼 학생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 삼’ 학생은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띤다. 입시를 코 앞에 두었다는 것, 식상한 말로 질풍노도의 청소년 꼬리표를 아직 떼지 못했다는 것, 본인들은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몰려다니는 그들을 보면 기성세대는 좀 두려운 마음이 든다는 것. 한 마디로 속을 알 수 없고 어디로 튈지 모를 불안한 세대이다. 그런 청소년이 정색하고 질문을 한다고? 그것도 아빠에게? 이 책의 형식이 남달라 보인 이유이다.
때문에 이 책은 응답자 김기현보다 질문자 김희림에게 더 방점을 찍어 주고 싶다. 그의 질문들을 읽어보면, 그냥 스쳐 지나가듯 발설한 카톡식 질문이 결코 아니다. 또한 ‘이것이 청소년의 필력이 맞나?’ 싶을 만큼 그의 질문은 예리하다. 하나님은 언제 악에게 승리하실지, 기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오직 기독교만 옳다고 봐야 하는지, 기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등등, 폐부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열 개의 질문을 읽다 보면, 아버지의 쩔쩔매는 모습이 연상되어 은근히 읽는 맛을 더한다. 이런 글 배틀(battle)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저자 김기현이 수 년 전부터 일구어놓은 ‘로고스 서원’이라는 독서와 글쓰기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니까 김기현과 김희림은 부자지간이면서 동시에 사제지간인 셈이다.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부자지간은 원래 사제지간일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옛날에는 당연히 그러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옛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문의 스승이거나 기술의 전수자였다.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무수히 질문하고 대답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그 모든 역할을 학교에 내어 맡기지 안았는가? 그래서 자녀들은 더 이상 아버지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아버지는 아들과 맺었어야 할 중요한 역할을 도난 당한 셈이다. 그래서 대답을 고대하는 아들의 신뢰나, 정직하게 대답하고자 애쓰는 아버지의 사랑도 발견할 수 없는 서먹한 관계가 된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아버지께 드렸던 마지막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몇 년 전 하늘나라에 가셔서 지금은 질문하래도 할 수 없는 당신께 드렸던 나의 마지막 질문…,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서글펐다. 서로에게 질문하는 관계, 그것이 정답은 아니어도 함께 응대할 수 있는 관계, 부모와 자녀는 마땅히 그러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안쓰러움이었다. 이것이 기독교 변증서로 읽힐 법한 이 책이, 내게는 변증서가 아닌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을 불러일으키는 가정사역서로 읽히는 이유이다. 솔직하게 물을 수 있다면, 대답이 명쾌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아버지와 아들, 좀더 솔직하게 질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