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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ㅣ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2년 전 첫 장편동화 #루호 로 깊은 인상을 남긴 #채은하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이웃집빙허각 은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凭空阁) 이씨와 그의 저서 #규합총서 를 소재로 한다. #페미니즘 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저격을 받는 요즘인데, 조선시대에 책을 읽고 글을 썼다니 그 일생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어린 시절 배다리(정조)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덕주는 동트기 전 배가 오가는 강을 보며 울렁이는 마음을 달랜다.
"멀리까지 뻗은 강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따라 흘러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그중의 절반은 여인일 텐데. 정말 그 많은 여인이 이리 똑같이 사나. 정말 모두가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사나 궁금해져요."
p.116
인연일까 운명일까, 덕주는 눈에 품은 불을 숨기고 살아야했던 빙허각 이씨와 함께 언문(한글)으로 된 살림백과, 실용 백과사전인 #규합총서 를 집필한다.(남에게 지는게 싫어 흔들리지도 않는 생니를 억지로 뽑았..언니..이건 너무 하셨쎄요;;)
"오래 남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하셨지요. 더 쉬운 글자로 쓰면 더 많은 사람이 볼 텐데요.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아끼는 책이 더 오래 남지 않을까요?"
p.85
한양에서 온 도령 윤보는 당시의 양반댁 며느리상과 거리가 멀어 호된 시집살이를 하다 갑자기 돌아가진 어머니가 그립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연암(박지원)처럼 직접 살림하는 삶을 꿈꾸지만 남자의 삶도 정해진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박지원 선생의 고추장 맛이 궁금하다^^;)
사람을 살리는 일 '살림'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는 수많은 지식과 비법을 담은 <규합총서>는 먹고살기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여인들에게, 살림을 오롯이 책임져야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
"왜 쓰느냐. 내가 일평생 해 온 일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까. 설령 누군가는 고작 여인의 일이라 깎아내리고, 또 그 일이 거칠고 고되나고 외면하더라도 그 속에는 내 경험과 삶이 들어 있으니까. 그건 어떤 책에서 읽는 글귀보다 귀하지 않겠니?"
p.151
이야기를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재주를 가진 덕주는 이웃집 빙허각이라는 어른을 만나, 결국 진흙 속 미꾸라지(泥鳅)라는 필명으로 책을 지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이름, 아무 대도 매이지 않고 싶은 마음을 담은 한없이 자유로운 이름, 빙허각!
자신의 뜻하는 바를 놓지않은 그 의지.🔥
경험으로 얻은 지혜(외우는 죽은 공부 말고!)
끊임없는 연구와 배움을 통해 쌓은 지식을 세상과 나누는 그 마음.(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 아니고!)
과거보다 오히려 지금 여기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학문이란 결국 잘 먹고 잘 입고 건강하게 사는 방책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겠니.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게 누구냐. 생각해 보렴. 그런 학문이야말로..."
"마땅히 부인이 연구할 바다."
p.68
국민을 위하는 진짜 마음을 자꾸 살피게 되는 요즘,
주부이자,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끊임없이 배우고 싶은 한 여성,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멈칫멈칫 생각을 끌어오는 작품을 만나 반가웠다. (빙허각에 대한 내적 친밀감은 마치 내 친구인양!)
* 삽화 중 덕주가 울며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 손에 붓이 들려있지 않아 직접 그려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