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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난 소년
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6년 7월
평점 :
그림과 만난 소년
『그림과 만난 소년』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하는 힘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결이 닮아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했고, 각자의 삶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한다는 점도 두 책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자기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 사람의 바깥세계와 안쪽 세계가 만나는 자리이다.”
책을 읽으며 오래전 미술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은 참으로 달랐다. 어떤 사람은 밝은 색을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어두운 색으로 마음을 채웠다. 분노를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서 더 큰 두려움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림에는 말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구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그림으로 표현했던 시간이다.
누군가는 구덩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 계단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나는 구덩이 안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그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가기보다, 그저 받아들이고 적응하려 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그림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던 것이 아닐까.
“색채는 정서와 그 사람의 성품을 가장 잘 비춘다.
그림에 나타난 색은 그린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림은 신기했다.
같은 구덩이 안에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스스로 길을 만들고,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하고,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 머물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각자가 삶을 견디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그림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그림과 만난 소년』 속 소년 역시 그림을 통해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다시 떠올랐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충고나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네 삶이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기다리는 대상이 있고,
그 기다림 속에서 만남의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책장을 덮으며 문득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의 구덩이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
재촉하며 빨리 나오라고 했던 사람일까.
스스로 계단을 만들라고 했던 사람일까.
아니면 아무 말 없이 그 사람 곁에 앉아
함께 하늘을 바라봐 준 사람이었을까.
『그림과 만난 소년』은 그림을 통해 한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이야기이면서,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다림과 이해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시 느낀다.
그림은 말하지 못한 마음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언어라는 것을.
그림과 만나는 시간은 어쩌면
참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