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주공아파트집 장만을 위해 사는건지 모르겠다. 천정부지로 오른 가격에 내집 마련의 꿈은 참 어렵다. 집 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아파트이다.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고 100억이 되는 아파트도 많다. 서민은 평생 사기도 힘든 아파트 언제부터 아파트을 선호하게 되고 로망으로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나또한 아파트에서 산지도 20년이 넘었다. 편리함도 있지만 사람사는 느낌은 별로이다.마포주공아파트가 60년대 처음으로 탄생하며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신화로 전해져 오고 있다.우리는 여전히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1960년대 개발 방식이 6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깊게 생각하는 못했던 아파트의 시초를 자세히 기록된 기록물이다.마포주공아파트를 읽는다고 딸에게 이야기 하니 이미 딸은 알고 있다고 해서 놀라웠다.아파트가 생긴 이유를 알면 많은 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책속으로 국민의 재건의식을 고취하고 대내외에 건설상을 과시하며 토지이용률을 제고하는 견지에서 평면확장을 지양하고 고층화를 기도하였으며, 생활양식을 간소화하고 공동생활의 습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수도 미화에 공헌하며 근대문명의 혜택을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써 대북 선전전의 효과를 도모했다.P23아파트단지는 도시 재개발 방식, 주택 공급 정책, 공동주택의 유형, 생활습속 등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나간다. 그 시작점에 마포아파트가 있다.P39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집단의 야심찬 실험이자 선전도구였다.P911963년도에는 15평형 일자형 아파트가 설계되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단식 아파트의 출현이었다.P197정부와 대한주택영단은 USOM의 의견을 수용해 10층이던 아파트 구상안을 6층으로 낮췄고,1962년 9월 USOM의 수석주택고문관인 귀도 낫조를 건설부 주택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며 먼저 관계 개선에 나섰다.P229민정이양 약속기한을 얼마 앞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인들에게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해야 하는 사업이 마포아파트였다.P231오늘날의 대한민국 아파트 사정과 주택 정책의 근간은 마포아파트로 다시 되돌아간다.P257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윤종섭이 (근린주구 계획구성의 개요)라는 연구논문을 (건축)에 게재한 것이 차음이다.P3191960년대 초 국가 프로젝트로서 '아파트 주택의 성패를 가릴 모형"으로 등장한 마포주공아파트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60년 만에 대체 불가능한 완벽한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한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여전히 '마포아파트 체제'속에 있다.P330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