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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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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11기 2번째 책 박노자 교수의 「붉은 시대」.


조선의 1920~1930년대는 붉은 시대였다.

세 가지 특수성이 전간기 공산주의적 급진주의를 특징짓는다. 첫째, 이 시기 전후 전 세계의 주류 급진 정당들이 단일한 중앙에서 지시를 받아 움직인 적은 없었다. 22p

둘째, 붉은 시대는 '새로운 유형'으로 나타난 레닌주의 정당의 황금시대였다. 23p

셋째, '새로운 유형'의 붉은 시대 정당은 질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국가, 즉 당-국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24p

처음 이 논문같은 책, 박노자의 「붉은 시대」를 펼쳐보고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라면 영 읽히지 않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사실 힘든 순간이 닥쳐왔을 때 나는 늘 해왔던 패턴을 유지하기보단 깨부수고 반대쪽으로 달려나가는 스타일이다. 지금도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책을 읽고 내가 관심없던 책이라도 무조건 주어지는대로 읽겠다고 하니포터 11기 입학신청을 했던 것이니 각오를 다잡고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붉은 시대」를 읽어나갈수록 이 시대 자체가 조선은 너무 암울한 환경이었고,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보려 돌파해보려했던 노력 중 하나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붉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감정이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나의 감정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점점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려 하는 자들에게는 늘 적이 많다. 하물며 그 붉은 시대에 혼란 속에서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아니었을리 없다. 체포되고, 감옥에 갇히고, 요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잃을 것이 사슬밖에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성이 조선의 젊은이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투표권 없이 지배당하며 세금도 내야 했다. 고용은 불안정했고, 임금은 일본인 동료 노동자보다 상당히 낮았다.86p 그야말로 마른 걸레를 쥐어짜도 한 방울 정도는 떨어진다는 말처럼 극악의 착취를 당하고 있었으니 급진주의는 자발적이면서 강력86p할 수 밖에 없었다.

「붉은 시대」에서 언급된 많은 인물 중 가장 인상깊게 느껴졌던 인물은 이재유다. 일본 검찰이 남긴 이재유의 심문기록(1937)에서 알 수 있는 다른 슬로건은 7시간 노동제(1시간의 점심시간과 주 40시간 노동), 기혼 남성 노동자의 최저임금 보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그리고 산업별 노동조합을 포함한 노동자의 조직화와 행동의 자유 뿐 아니라 심지어 노동자가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공장위원회를 조직할 자유와 노동자의 자기방어용 민병대 결성까지 포함했다. 147~148p

이건 너무나 현대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이것이 88년 전의 기록이라니. 게다가 대부분의 요구들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적이라고 분류할 수 있었다.148p

의무적 수업 출석과 군사화된 병식체조 시간 폐지, 교사 임용 및 해임 절차의 민주화(임용과 해임 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석), 기숙사에서 군대식 규율의 자유화, 기숙생 식사 개선, 그리고 명백하게 아주 중요한 내용인 학생에 대한 교사의 "지배, 억압, 학대, 관료적 언어" 의 사용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는 외부 교육 관료들의 관료적 미시 통제로부터 해방되어야 했고, 내부적으로는 "암기 위주의 교육 방법"에서 벗어나야 했다. 148p

이쯤되니 나는 이재유가 타임머신을 타고 2025년으로 올 수 있다면 현재 세상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또 이자신이 꿈꾸던 것들이 대부분 이루어진 이 세상이 과연 그가 꿈꾸던 것 같이 좋아보일 지 궁금해졌다.

어찌보면 빈곤과 착취, 계급(일본인,친일파와)의 차이로 인해 급진적으로 공산주의 활동을 하게 된 것이었던 붉은 시대가 왜 지금 2025년과 그리 다르게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20대에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았다면 바보이고, 40대에 이르러서도 마르크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그 또한 바보라는 말이 있다. 100년 전 조선과 100년 후 대한민국은 다르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실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20대들은 마르크스에 빠지기보다는 손가락으로 숏츠를 스와이핑하다가 김정은을 ai로 우스꽝스럽게 합성한 영상이 나오면 무심히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기 위해 또 다시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와이핑할 것이니까.

그러나 어쩌면, 한편으로는, 우리는 100년 전 그들보다 퇴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계와 소통하려는 노력, 현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도 마르크스와 함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패턴을 파악하고,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개척해보기 위함이라 배웠다.

100년전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것 역시 우리들이 꿈꾸는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람이 꿈꾸는 것은 희망이다.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왜 이 논문같은 책을 읽고 마음이 아픈것일까.

우리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란 말을 너무나 쉽게 한다. 하지만 그들이 피흘리며 핍박받으며 이뤄냈기에 이 시대를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다.

100년 전 「붉은 시대」 속 인물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었음을 몰랐던 것이 미안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아파하며 살고 있음이 후세의 사람들에게 미안한 것일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에게도 붉은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듯, 피로 쓴 것 같은 책, 「붉은 시대」였다.


일본 검찰이 남긴 이재유의 심문기록(1937)에서 알 수 있는 다른 슬로건은 7시간 노동제(1시간의 점심시간과 주 40시간 노동), 기혼 남성 노동자의 최저임금 보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그리고 산업별 노동조합을 포함한 노동자의 조직화와 행동의 자유 뿐 아니라 심지어 노동자가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공장위원회를 조직할 자유와 노동자의 자기방어용 민병대 결성까지 포함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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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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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11기 입학 후 처음 받게 된 책, 「여름에 내가 원한 것」


프롤로그에서 서한나 작가는 분명하게 「여름에 내가 원한 것」 이 어떤 책인지를 밝혔다. 다만 내가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뜨거운 여름 한낮에 어울리는 끈적한 재즈를 들으며 책을 펼쳤다. 내게는 전혀 새로운 전개에 머릿속에 물음표를 계속해서 늘려가며 중간쯤 읽었고, 56p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여름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서사다. 라는 문장을 만나고 나서야 다시 프롤로그를 읽었다.


아하! 프롤로그는 정말 예고였던 것이다. 서한나 작가가 손모가지를 걸고 쓰고자 하는 피 맛나는 이야기들에 대한.


태생을 그런 것에 어울리지 않게 태어났는지, 나는 소녀시절부터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이야기가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니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이라는 제목에 내가 원한 것과는 다른 사랑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펼쳐지니 당혹스러울 수 밖에.

아마 내가 계속해서 책장을 넘길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름이라는 계절과 끈적한 재즈 때문일 것이다. 끈적한 재즈와 여름 날씨, 매미소리가 이 책을 읽는 중에 자꾸만 나 역시 서한나 작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라고 부추겼다. 예를 들면 뭐 이런 식의 이야기다.


눈을 감고 에어컨이 고장난 뜨거운 여름 오후를 상상해보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쏟아진다. 당신은 벌써 오늘 세 번째 몸에 물을 끼얹고 나와 선풍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간 시원한 기분이 든다. 집 전화기가 울려 슬쩍 골이난다(핸드폰이 없는 시절이다). 쯧, 하고 혀를 차고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다. 당신은 너무 놀라서 전화를 확 끊는다. 그리고는 이내 애꿎은 머리카락을 벅벅 흐트려놓는다. 심장이 펄떡펄떡 뛰어서 전화기 버튼을 누르는 손이 떨린다. 애써 힘을 주어 전화버튼을 누르면 그 사람의 어머니가 전화를 받아 그 사람은 방금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놀러 나갔다고 전한다. 당신은 선풍기 앞으로 돌아와 바닥에 누워버린다. 그러나 이내 다시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밖으로 달려나간다. 어딘가의 골목에서 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칠 지 모르니까.

또 책을 읽으면서 나는 통통 튀는 성격과 밝고 명랑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그녀는 N의 화신같이 넘치는 상상력으로 주변을 즐겁게 한다. 만약에 이렇다면 어떨까? 만약에 저렇다면 어떨까? 주변에 현실적이고 건조한 지인들이 많기에 잠시 넣어두었던 나의 상상력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밖으로 마구 뛰쳐나오곤 한다.


오늘 아침, 그녀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네가 쓴 것 같은 책이었어. 그녀는 아직 이 책을 읽기 전이라 이게 얼마나 큰 찬사인 지 알지 못할테지만, 내향적인 나의 칭찬은 늘 이런식이다.


그러나 「여름에 내가 원한 것」 을 읽으며 나는 또 한편으로는 몸서리쳐지는 쓸쓸함을 느꼈다. 서한나 작가의 통통튀는 문장들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것이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떠오르게 했다.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으로 보이지만 나는 이 책에서 가을을 느꼈다. 왜냐면 「여름에 내가 원한 것」 1부 연인들에 가득 들어차 있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을 완성해주는 것은 내가 그에서 멀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다. 218p


치열하게 울던 매미들이 땅에 떨어져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지나쳐 지나가는 계절, 눈부신 초록이 가시고 나뭇잎이 말라 떨어지는 계절, 눈 밑에 녹록지 않은 삶의 그늘이 드리워진 어느 누군가가 여름을 회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서한나 작가에게 조금 치사하다는 기분과, 억울함을 동시에 느꼈다. 추천사에서 고선경 시인이 쓴 것처럼 가슴 떨리는 사랑의 속삭임이 은어 떼처럼 귀를 간지럽혀도 내 삶은 드라마틱 할 리 없지만...서한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모두 듣고 나니 이제 내가 사랑한 여름의 장소마다 그가 서 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2부 감각들과 3부 장소들로 넘어가면 더더욱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여상한 얼굴로 위스키를 넘기며 툭, 내뱉는 것 같은 문장들인데 그게 정말 나를 어지럽게 한다. 서한나 작가의 문장들은 연애고수의 밀당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의 문장들은 못되고 예쁜 애처럼 독자를 바꿔가며 자신의 인력을 실험하는 중이다.


1부 연인들에서도 여름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모든 풍경들을 묘사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굴더니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이제는 여름을 샅샅이 핥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 종내에는 그녀의 여름은 살아있음 그 자체라는 것이 점차 드러나면서 어쩌면 이 책은 여름이 아니라 살아있음과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서한나 작가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생명력 가득한 순간, 열망하고 욕망하여 감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악착같이 썼다. 피맛 나는 책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나는 알 것 같다. 그 모든 것들은 여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언젠가 여름이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쓸쓸함은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단맛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단맛을 만들어내는 쪽도 좋다.153P 고 말하며 설탕에 시간을 더하고 가두고, 허무하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에 「여름에 내가 원한 것」 이라는 사건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 장을 덮고 여운이 길었다. 밤을 지새며 실컷 웃고 떠들었는데 문득 친구의 눈에 얼핏 스쳐가는 쓸쓸한 허무를 본 것만 같았다.


그렇다.

무언가를 향한 안달복달과 그 후에 오는 소강상태는 아무렴 이 계절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여름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서사다. - P56

단맛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단맛을 만들어내는 쪽도 좋다. 설탕에 시간을 더하고 가두기. 허무하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에 사건을 만들어내기. - P153

그리움을 완성해주는 것은 내가 그에서 멀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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