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찡하도록 특별한 보통날'을 선사하는 감성 에세이, <Dreams>


 

모든 글에는 색깔이 있다. 크레파스 상자 안에 줄 맞추어 담아 놓은 색들로는 한정할 수 없는 무수하고 풍부한 가운데 각기 유일한 색채이다. 마치 제 부모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태어나는 핏덩이처럼 하나의 글은 작가의 고유한 안목과 삶, 그리고 그의 성품마저 닮아있기 마련이다. 낯을 치장하고 매무새를 만져 형체를 포장할 순 있지만 글결이란 것은, 더 나아가 같은 시공을 영유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란 인위적인 노력으로 손볼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자 그 삶의 반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글이 너무 무섭다. 내 글이 표현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지 감히 두려워 펜을 들기가 어려운 적이 헤아릴 수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곧 삶을 길어올리는 행위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글에는 정결하며 견실하여 추앙할 만한 삶이 담겨야 한다는 어떠한 법칙도 존재하지 않지만, 굳이 유약하고 올곧지 않은 성품을 만인 앞에 해체해 보일 이유도, 동기도, 그리고 용기마저 없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에 그녀의 글이 하나 둘 포개어지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파닥이는 작은 날갯짓을 보았다.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타임라인을 지켜내는 한결같음이 미루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결말보다는 과정을 쪼개고 성취해가는 단계들에 열광한다는 대목을 마주쳤을 때 그녀가 말하는 평범함이란 이미 내 앞에 비범함으로 둔갑해버린 터였다. 인연은 인연이어서 타자의 삶에 문득 들어오는 것일까, 아니면 수줍게 내민 마음에 동하여 인연이 되는 것일까. 문득 선물이 되어 돌아온 그녀의 삶의 단편들에 나는 그 저녁을 울고 웃었다.



 

「 평범하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어 보통이다 」



 

바위라는 동일한 사물을 이야기함에 있어 어떤 위치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위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느낌이 각기 달라지듯, 어쩌면 바위의 본질은 아니, 평범하다 정의된 모든 유형과 무형의 것들의 본질은 순전히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의 안목에 의해 평범하게 남을 수도, 비범한 깨달음과 행복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렸다. 그래서 다수의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을 짓는 이의 눈은 언제나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녀의 글엔 섬세함이 배어난다. 본래의 세심하고 다감한 마음이 글자 위에 스며 오른 것일 테다. 내가 갖지 못한 시선이기에 내게도, 그 누구에게도 있음 직한 보통의 일상이 비로소 그녀의 연필 끝에서,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다가와 매일 새로운 보통의 나날들을 선사해주는 그녀에게 애정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책 속 밑줄 긋기 -



저는 마지막 말을 거의 참지 않았습니다. 제 마지막 말에도 불구하고 진짜 마지막을 참아 준 무수한 상대들의 침통했을 심정을 그제야 굽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시간 위로 올라탄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개의 나날들에 저는 누군가의 인내와 배려로부터 시간 위로 옮겨졌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랬던 덕분으로 저는 진짜 마지막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분노와 상처 위에 딱지를 얹어 준, 시간의 약효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저는 적어 온 편지보다 더 긴 문자를 답으로 보내 놓고 밤잠을 설쳤습니다. ‘시간이 약이다.’ 그 속설 뒤에는, 제 마지막 말을 애써 외면한, 무수한 이들의 감내가 있었습니다. (20쪽)


참 재미있는 역설입니다. 더 살고 싶어지기 위해 유언장을 새겨놓는 관습이라는 것이. 더 찬란한 삶을 위해 죽음 목전의 찰나로 정신적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이. 그때껏, 저는 제가 걸어 온 삶을 섬세하게 되돌아보며 앞으로 향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유언장을 쓰고 보니 그동안의 것들은 다만 ‘뒤를 힐끗댄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유언을 남기는 상황’이라는 간단한 가정은 놀랄 만한 생생함으로 제 삶을 구석구석 돌이켜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22쪽)


윤회, 그것을 덜컥 믿었다는 것은 이 생의 부피보다 사랑이 더 커졌다는 걸 의미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생으로는 다 담아 내지 못해 다음 생을 필요로 할 만큼 사랑이 부풀어 올랐다는 걸 의미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우스갯소리 같은 (때로는 자기 자신조차 우스갯소리라 여기는) 다음 생을 입에 올릴 만큼, 가득 차오르다 못해 흘러내리는 사랑을 남김없이 챙겨 들이고 싶었던 애틋함이 알알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진실보다는 진심에 더욱 기대어 살아가는 축에 속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래서 진실의 부실함 탓으로 종종 오류의 끈적끈적한 늪에 빠지고는 하지만,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는 진심 어린 가슴이 있어 시큰하게 행복합니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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