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종종 과거가 우리에게 부여한 방향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경험은 그 경험이 끝났을 때, 단순히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차라리 그 경험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경험은 두껍게 우리 안에 쌓여 다른 방식이 아닌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다른 것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에 기반을 둔 어떤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어떤 개성 있는 스타일이 우리의 것이 되고, 다른 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과거가 미래로 쓸려 들어가면서, 미래에 색을 입히고 미래의 방향을 세운다. 미래는 과거가 생겨난 곳에 있으며, 과거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에 존재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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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나타나기 전에 예컨대 안정시키는 세계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의식과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은 하나의 위협적인 세계의 가능성을 표현하면서 등장하며, 이 세계는 타인 없이는 펼쳐지지 못한다. 나? 나는 나의 과거 대상들이며, 나의 자아는 바로 타인이 나타나게 만든 한 과거의 세계에 의해 형성되었을 뿐이다. 타인이 가능 세계라면 나는 과거의 한 세계이다.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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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들뢰즈의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일, 혹은 들뢰즈의 진정한 스승들을 확인하는 일은 기껏해야 예비적인 연습일 뿐이다. 즉, 아마도 필요한 일일 테지만, 분명 충분한 일은 아니다. 사실은 들뢰즈는 -친구이든 적이든- 철학사에 등장하는 모든 철학자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읽으며, 동일한 전략을 따라 각 사상가를, 말하자면, 미분적 한계로까지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 그런 규정들은, 전적으로 부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런 규정들은 들뢰즈 사유의 운동과 "되기"를, 들뢰즈 사유 그 자체에 있어서든, 들뢰즈 사유가 철학사와 맺는 복잡한 관계에 있어서든 놓치고 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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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아니 그조차도 확실치 않다. 오랜 세월 동안 한낱 흩어진 페이지들이었을 뿐이다. 〈시간〉이 없다는 조바심에 다시 읽거나 아마도 이따금씩 다듬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시간일까?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유령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들은 시간 밖에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진 유일한 존재들이다.

나는 이른바 공식 문학에 엄청난 경멸을 품었다. 비록 주변부 문학에 대한 경멸보다 조금 더 컸을 뿐이지만. 그러나 나는 문학을 믿었다. 요컨대, 야심도 기회주의도 아첨도 믿지 않았다. 헛된 몸짓을 믿었고 운명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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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좀비 같아요.> 딱히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여자가 자기 손톱을 뜯어보며 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말할 때는 더더욱 그랬지요. 맞는 말입니다. 행복한 고자들과 좀비들로 가득한 행성에서 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니까요.

제가 <눈만 내리면 바랄 게 없겠다고요?>하고 묻자 아저씨는 <네, 사장님>하고 대답했어요. 그러더니 술이나 마약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눈에 파묻혀 죽어 버렸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저 나귀랑 나는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아〉 하고 카리다드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태어난 곳에서도 외국인이니까.〉 저는 카리다드에게 그건 틀린 말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셋 중에 법적으로 외국인인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요. 저는 카리다드의 허리에 살며시 팔을 두르고 기다렸어요. 〈카리다드는 하느님의 눈에도 경찰의 눈에도 외국인이야. 자기 눈에도 그럴 테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하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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