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의 초상화는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한 개인은 여전히 그 자신으로 남아 있을까?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 사랑하는 존재는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까? 소중한 얼굴이 질병 때문에, 광기 때문에, 증오 때문에, 죽음 때문에 멀어질 때, 얼마나 오랫동안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자아‘가 더 이상 ‘자아‘이기를 멈추는 경계는 어디인가? - P19

상이한 예술들은 상이한 방식으로 우리 뇌에 접근해서, 각기 다른 용이함으로, 각기 다른 속도로, 각기 다른 정도의 불가피한 단순화를 통해, 그리고 각기 다른 항구성으로 자리를 잡는다. 우리 모두는 문학사에 대해서 말하고 문학사를 내세우면서 문학사를 안다고 확신하지만, 공동 기억 속에서 문학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수많은 독자들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제 각각 자신을 위해 그리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이어 붙인 패치워크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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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그의 이성과 감수성으로 단단히 지어올린 논리 작용을 통해 합리성이나 좋은 감수성이라곤 궁하기 짝이 없는 세상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왔지만, 아무리 그런 논리로 여전히 그들을 재고 비난할 수 있다 해도, 하지만 지금은 헤트베세르 골목에서 바로샤즈 시청 거리의 죽은 듯한 침묵 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어쩔 수 없이 그의 모든 투명한 생각과 이른바 ‘평정한 추론 법칙‘에 대한 고집스러운 집착은 여기서 다 허사였다고 자인해야만 했다. - P222

그가 생각해낸 구절들은 세상에 대한 자랑스러운 우위를 확립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낭패를 당했다. 단어의 뜻은 다되어가는 손전등 불빛처럼 희미해졌고, 결과적으로 단어의 뜻으로 귀착할 수 있었던 대상들은 다 낡아버린 오십 년 남짓한 세월의 무게 아래 으스러졌고, 모든 냉철한 단어와 모든 냉철한 생각이, 어지럽게 의미를 잃어버린 결과를 맞아, 있을 법하지 않은 그랑기뇰 무대 장치의 덫에 못 이기고 무너졌다. - P223

그런 세상을 향해, 그 속에 ‘처럼‘과 ‘마치‘ 같은 비유로 내뱉는 서술들은 신랄한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세상이여, 그 속에 든 모험가들은 무지나 반대 때문이 아니라 거기 맞지 않기에 뭇 일들처럼 아마 휩쓸려 가버릴 텅 빈 제국이여, 그러하노니, 이런 ‘현실‘들이여, 그대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노라, 에스테르는 몸서리쳐지는 혐오감과 구역질로 마음속에 적어 내려갔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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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상의 동료 인간들‘은 역시나 외풍 불고 단열도 안 되는 이런 판잣집살이에 처한 줄 알면서, 세상없어도 기정사실로 받드는 무언가에서 달콤함과 불빛에서 아주 멀리 배제되는 일은 참을 수 없어, 영원히 기대의 열기로 불타고 있고, 어떻다 정의 내릴 엄두도 못 낼 무언가를 기다리고, 모든 유효한 증거가 매일같이 계속 축적되어,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도, 그래서 그들의 기다림이 순전히 무위로 끝날 것임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희망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 P198

믿음이란, 여기서 에스테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절절히 되새기며,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일들이 모두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같은 방식으로 음악은 자신의 더 좋은 부분의 발화發話나 더 밝은 세상에 대한 모종의 개념이 아니라 손쓸 수 없는 불치의 자아와 안타까운 상태의 세상을 덮고 위장하는 일이었다. 아니다, 그저 위장하는 일이 아니라 그런 사실에 대한 완벽하고도, 뒤틀린 부정이었다. 작동하지 않는 치료이며, 신경만 무디게 하는 독주였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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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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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제자리를 맴돌며 신은 폐곡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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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둬라. 인생의 비밀은 농담에 있다는 걸." 그가 엄숙히 말했다. "일은 어렵게 시작해서 나쁘게 끝난단다. 중간에 일어나는 일은 다 좋은 법이야. 네가 걱정할 건 마지막 순간이란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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