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매탐정 조즈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5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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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먼저 보고 호기심에 원작 소설도 읽어봤는데 드라마가 원작을 충실하게 잘 옮겼다보니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을 서술로 보는 것 외에 큰 재미는 없었다. 오히려 서술트릭과 반전은 챕터마다 범인의 시점을 넣은 소설의 구성보다 드라마에서 더 자연스럽게 잘 살린 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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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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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신파같은 기승전결 속에 유일하게 탁월하고 정교했던 씬은 시호의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에서 시작해 데이트 폭력까지 이어지는 전말을 털어놓는 장면. 어설프게 따뜻해지려 하는 것보다 지독한 자기혐오, 어쩌면 혐오스러운 자신의 자각에 가까운 자기반성이 더 생생하고 예리하다. 그래서 더 인간으로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가슴을 항상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덥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귀하고 필요한지, 그래서 어느새 내가 차갑게 식어있다는 것을 눈치챌 때는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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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 심장을 쏴라 -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은행나무 세계문학상 수상작 5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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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분노하고 싸우고 춤추고 두려워하고 뛰어들고 날 수 있는 승민. 끝까지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수명의 삶에 절대적인 지표를 새기게 된 거 같다. 인간. 인간의 삶에 대한.

승민이. 수명이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시절이 순환하지 않는 계절이 되고 떠나간 승민이가 어디에 도착했을 지. 별의 바다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을 지. 영원히 내려오지 않는 글라이딩을 계속 하고 있길 바란다.

승민은 산을 닮았다. 사람들은 산을 정복한다고 하지만 그 봉우리에 올랐던 것만으로는 산의 손톱만한 것도 지배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 험준한 얼음과 바위, 경사, 그 산을 한 번 올랐다고 다음에도 또 올라갈 거란 보장은 없다. 목숨마저 위험하게 하는 극한 환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 천험. 그리고 별들의 궁륭. 하늘을 긋는 별빛의 무지개. 그 밑으로 펼쳐진 깎아지른 듯한 눈덮인 봉우리. 그 속에는 자신을 닮은 풍경을 날고 있는 글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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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 작고 찬란한 현미경 속 나의 우주
김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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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나 생물학 쪽 도서를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예쁜 꼬마 선충'을 실제로 연구하는 연구자가 쓴 책이다. 선충, 미생물 등 사람들은 뭐야? 벌레잖아? 라고 말하는 존재들을 연구하는 입장에서의 애환, 인간의 유전자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대를 거듭해 내려오는 특질과 돌연변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징그러워 하거나 하찮게 보는 연구 주제들의 중요성, 대학원에서 관심이 부족한 분야를 연구하는 것의 현실적 고충 등을 써내려간 에세이인데 개인적으로는 '선충'이라는 분류가 따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지라 전반적으로 신기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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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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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주인공 소녀는 어머니의 출산 때문에 잠시 먼 친척인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져 여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느 성장 소설이라면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는 매일매일 새롭고 다채로운 모험이 펼쳐지고 모험을 끝내고 성장한 소녀가 자신을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맡겨진 소녀에서는 새로운 집에서 맞이하는 경이로운 비밀이나 가슴 뛰는 사건 같은 건 없다. 소녀는 그저 말없이 매일매일 자라날 뿐이다. 요란한 표현이나 겉멋 든 생색 따위는 없는, 그저 진심 어린 따뜻함과 애정으로 소녀를 지켜보고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가르쳐주는 킨셀라 부부와 함께.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그들이 자신만큼 외롭고 쓸쓸한 상처를 지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런 서글픈 사연 앞에서 으레 여타 작품들처럼 순수한 어린 아이가 서투른 위로를 하려 한다거나, 소녀의 애정에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 안고 하늘이 대신 내려주신 천사라며 소녀를 치켜세운다거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녀를 입양하기로 다짐한 킨셀라 부부가 소녀의 무신경한 부모와 담판을 짓고 결국 세 명은 함께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거나, 하는 눈물 콧물 감동 스토리로 넘어갈 수도 있을텐데 '맡겨진 소녀'는 전반부의 담담함 그대로 전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도 매일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거기에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는 것을 담담히, 이 전까지 소녀에게 하나 하나 가르쳐준 모든 것들처럼 자상한 태도로 알려 줄 뿐이다. 소녀는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하나의 가족이 된다. 그것은 원래대로라면 친부모에게서, 자신의 집에서 느꼈어야 할 감정이지만.

타인의 모습을 상처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마음을 여는 경험을 한 이후, 기적 같은 반전은 없고 소녀는 다시 남처럼 낯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준 킨셀라 아저씨를 마지막으로 안아주려 뛰어가 포옹하며, "아빠"라고 경고한다.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친딸도 아닌 자신을 계산 없이 순수하게 사랑해주는, 어쩌면 순진하다고도 할 수 있는 마음 따뜻한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냉정한 세상을 조심하라고 경고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린 아이에게 신뢰할 수 없는 부모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일상의 위협이고 공포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대단한 계기가 아닌 물결처럼 잔잔하게 반짝이는 일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녹아든다. '맡겨진 소녀'는 이런 상반된 정서가 자아내는 긴장감과 사소한 일상에 녹아있는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파악해내는 유려한 문체가 결합되어 여느 성장 소설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에너지를 응축한 작품이다. 집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어른들에 의해 떠밀려간다 해도, 맡겨지는 곳에서조차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있는, 세상 모든 말 없는 소녀들의 날카로운 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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