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에 만나요
용윤선 지음 / 달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하고 있는 말이 당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멈출 때가 있다. 쓰고 있는 글이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같아서 서랍 속에 넣어둘 때가 있다.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할 때는 아프다. 그래도 아프게 했으니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면 견디어지기도 한다.
-
서로의 감정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었지만 한 번도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존재를 온전히게 지켜내고 싶을 때 사람은 침묵하곤 한다.
-
시간은 누구와 무슨 일로 어떤 약속을 했을까. 당신이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당신이 될 수 없을때, 각자의 생은 단단해졌고 커져 있었다. 폐허가 되었다. 살아 있음이 거룩해졌다.
-
관계의 궁극적 결말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관계의 궁극적 결말은 영원이 아니다. 결말이 영원이었던 관계가 있다면 믿지 않을 작정이다.
-
사람을 좋아하는 깊은 마음 뒤에는 반드시 미움이 스며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소중해진 것 다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내게서 멀어지는지를 겪는 것이다. 견디어보는 것이다. 견딜 수 있어도 견딜 수 없어도 사랑이다.
-
운명적인 일이 멈춰지는 것도 운명이 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당신의 의지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속되지 못하면 운명이 아닙니다.
-
헤어질 때는 슬픔을 모른다. 헤어지고 나서 내내 슬퍼서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이 이별이라는 것을 여러 번 겪었다. 지금 울어도 또 울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의 눈물은 참아도 괜찮다고 믿는다.
-
우리는 사랑해서 하는 말과 미워서 하는 말을 구별한다.
-
관계에 있어 한쪽이 다급해지면 헤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다급해짐도 느긋해짐도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도 모르시게 그렇게 되어졌다.
-
나의 어떤 시간은 불행하다고 믿었다. 나의 불행한 시간을 알리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오랜만에 만나면 오랜만에 만나서 미웠다. 미움은 유혹이었다.
-
죽음은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살아 있으면 모두 괜찮았고 살아 있지 못하면 모두 괜찮지 않았다. 사람은 모두 죽지만,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은 재앙 같은 일이었다. 모든 일은 사는 일과 죽는 일로 나뉘었기 때문에 중요한 일도 중요하지 않은 일도 없었다.
-
이상형이 세상을 떠난 사람일 때 이상형은 이상향이 된다.
-
나는 술을 혼자 따라 마시는 버릇이 있다. 술은 혼자 따라 마셔야 맛이 있었다. 늘 혼자이고 싶은 마음에 술만큼은 혼자 따라 마셨건 것 같다.
-
사람이 사람과 비슷하다는 말은 비슷해지고 싶다는 말이겠지. 비슷해지고 싶다는 말은 비슷하지 못하디는 말에서 나온 것이겠지.
-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에게 줄어드는 것은 사람이었다.
-
누군가 나를 부른다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유 없이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만나고 헤어질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일어나는 일들에게 왜냐고 묻지 않아도 괜찮아진다. 세상 모든 일은 내 알 바가 아니다.
-
길과 사람관계가 다른 것은,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순환하게 마련이지만 사람관계는 의지로 자를 수 있다. 사람들은 인연이 다했다고도 한다.
-
영혼으로 마시던 술과 나의 몸이 새롭게 다시 만나는 것이다. 깊은 밤도 좋고 아침도 좋다. 깊은 밤은 새롭게 만나는 것이고 아침은 어제의 밤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
태어나는 순간, 헤어지는 일은 만나는 일의 기약처럼 다가온다. 우리 모두 헤어지고 우리 모두 죽는다. 나도 헤어질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헤어지고 죽는다고 모두 헤어지고 죽는 것이 아니었다. 잘 헤어지지 못하고 잘 죽지 못하면,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룰 때까지 사랑하는 수밖에 없듯 헤어지지 못하고 죽지 못한다.
-
-
-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무언의 먹먹함이 가슴속에 남았다. 그리고 이 작가의 첫 번째 책이 궁금해졌다. 조만간 책장에서 꺼내서 읽어봐야지.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 작가한테 커피를 배워보고 싶다. 또 내 마음이 조금더 커지면 그때 이 책을 한 번더 읽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그나저나 제목부터가 `13월에만나요` 라니 ㅠ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 세시
새벽 세시 지음 / 경향BP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너라는 문장에는
마침표가 없었으면 좋겠다.
-
인생을 살면서
경험이라는 건 좋은 것 나쁜 것을 떠나
언젠가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날이 온다지만.
내게 너라는 사람만은
경험도 추억도 아닌
매 순간 함께하는 현재였으면 싶다.
-
부러움과 관심은 한때지만,
진심과 믿음에는 한계가 없으니까.
-
내게 가장 중요한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이 드는지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렇게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남을 더 알아주고 사랑할 수 있는 법이다.
-
남을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나를 아끼는 만큼 남을 아껴줄 수 있는
나로 살아가길.
시간이 지난 뒤 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어 있길.
-
조금도 소중하지 않았던 일상이
손꼽힐 만큼 소중한 날이 될 수 있고
지금 내 옆의 당연한 사람이 마음 가득 간절해지는 날이 오니.
우리는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비록 작더라도 꽉 찬 사람이 되길.
-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꼭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는데
그 긴 시간 동안
너를 사랑할 준비를
몇 번이고 마친 내게는
왜 너라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
지키지 못할 약속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왜 기대도 없던 사람한테
기대를 심어줘서
밀려오는 실망감에 비참하게 만드니.
네가 아무렇지 않게 뱉은 그 약속이
나에게는 참 중요했는데.
-
원래 별것도 아닌 일이
제일 힘든 거예요.
큰일이면
주변에서 괜찮냐고 걱정이라도 해주지.
아프다고 티라도 낼 수 있지.
근데 이것 참, 별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웃기만 하잖아. 괜찮은 척.
그 별거 아닌 게
누구한테는 전부였는지도 모르는데.
-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지.
-
내게는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나 중요해.
그러니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네 마음을 다 알겠거니 생각하지 말고.
-
가끔은 눈치가 빠른 것이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일에 대한 대처가 빠를 수 있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알아 버려서
혼자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니까.
그 대상이 너라면
다른 일들보다 더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실 마음이 떠났다는 사실은
모르는 게 약인 것을.
-
-
-
제목 그대로 딱 새벽세시에 읽으면
좋을 책인듯.
사랑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분에게
선물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며칠 미친 듯 퍼대다가 딱, 술 멈추고 맨정신 돌아오면 낯선 행성에 팽개쳐진 기분이다. 우울하고 참혹하다. 아무 데서도 버림받은 거 같지 않은데 그냥 서럽고 억울하고 막막하다. 이래서 형님들께서 해장술이라는 절묘한 비방을 맹그신 게 아닌가. 그래도 오늘은 아니 마시겠다. 때론 맨정신으로 삶을 견뎌야 하는 날들도 있는 것이다.
-
사람을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다. 술 마실 때마다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마신 술의 양은 내가 만난 사람의 양에 비례한다. 그토록 많은 술을 마셨으니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뜻이다. 나와 알고 있는데 술자리에서 조우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나를 만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데 아직 술자리에서 술 한 잔 권하지 않은 사람은 인연을 제대로 맺은 사람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술자리에서 만나야 진짜 만난 것이다.
-
우울과 절망이 느낌이라면 그것은 곧 지나간다. 하지만 불안을, 공포를, 우울을, 절망을 깨달아버린 거라면 그것들은 절대 지나갈 수 있는것이 아니다. 진정한 불안과 공포, 진정한 우울과 절망은 깨달음의 세계다. 가벼운 느낌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한 번 깨달은 것이 무슨 수로 극복될 수 있겠는가.
극복된 깨달음은 가짜다.
사랑도 그와 같다. 시바.
-
당신은 묻는다, 왜 술을 마시냐고. 나는 대답한다, 외로워서 마신다고. 당신은 다시 묻는다, 술 마시면 안 외로워지냐고. 나 또한 다시 대답한다, 마시면 더 외로워진다고.
그런데 그걸 알면서 왜 술을 마시냐고? 돌아갈 곳 없는 자가 돌아갈 곳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 술은 때로 그것을 가장 명징하게 깨닫게 해주는 도구로 쓰인다. 창밖에 또 술 온다. 비 한잔하고 보자.
-
실패한 사랑 따위, 실패한 청춘 따위, 다시 실패하지 못해 기를 쓰고 불안해하는 희망 따위 다 놓아버리고 딱 막걸리 두어 주전자만큼의 취기와 용기로 하루를 버티는 것.
-
그러나 친구여,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일 없이 반갑고, 일 없이 그립고, 일 없이 술잔을 건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런 까닭 없이 옛 이름들을 한 번 불러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
나에겐 아주 나쁜 버릇이 있는데, 이를테면 술이 깨기 전에 먼저 잠에서 깨는 것 같은 것이다. 술보다 잠이 먼저 깨는 사람은 아주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람이라고 나는 믿는다.
-
아무튼 이 시간에도 깜빡이는 커서에 눈 맞춰놓고 좌절하며 머리 쥐어 뜯고 있을 벗들, 선배들, 애인들, 후배들이여. 그대들의 이 시간만큼 아름다운 좌절은 없다. 라면이라도 하나 독하게 끓여먹고 매운 문장을 껴안으시라.
-
올바른 신념은 더딘 것처럼 보이나 언제나 바른 목적지에 도달 한다는 것을, 권력보다 언제나 백성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
그리고 제발 책 표지에 띠지 좀 두르지 마라. 돈 들여서 그거 두르는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책 읽을 때마다 조낸 불편하고 거슬린다.
-
˝추억의 힘과 그리움의 힘은 같은 높이의 음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내 노래는 언제나 길 없는 허공에 발이 묶인다.˝
-
제발 당신의 이야기를 하라. 정히 생각이 없고, 할 말이 없으면 그 시간에 라면 가닥이라도 길게 붙들게 오래오래 삼킬 일이다. 그 시간만큼이라도 세상이 조금 조용해지지 않겠나. 고요하고 맑은 사람이 그립다.
-
-
-
추천받아 구매하여 읽은 책.
처음에는 응? 읭? 엥? 웡? 😓 이런 표정으로 책을 보다가 읽다보니 술 얘기와 `조낸`, `시바` 이런 단어가 계속 나오고 갈수록 내 스타일에 책이었어..
이로써 또 술먹을 이유가 생기네🙊

#다음엔뭐읽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문학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비추어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반성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믿었다.
-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사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
인간관계에서는 솔직함이 중요하지만 교회의 제단 뒤에서 거대한 진실을 모두 폭로할 필요는 없다. 교회 본당 앞의 널따랑 홀이든 신도석이든 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 최대한 멀리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
-
이런 순간에 환자와 함께하는 건 분명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생명을 지켜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이 일의 신성함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
마지막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실감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퇴근하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몇 가지 행정적인 일은 모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내일로 미룰 수 있을까?
안 될 말이지.
한숨이 나왔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계속 회전하고 있었다.
-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것은 믿을 수 있다.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폴에게 주어진 삶이었고, 그는 그 삶으로부터 이 책을 써냈다. 그래서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지금 이대로 완결된 작품이다.
-
-
-
나도 과연 죽음앞에서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저렇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 싶기도하다. 작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 도서의 끝을 짓지 못했지만 이 자체로도 완결이 된 도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祝詩」

내가 당신을 귀하게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겼던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지길 바랍니다
내 가장 아픈 곳을 밝혀 사랑한 것만큼
누구에게든 가장 깊은 사랑의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지나간 날들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고통과 자기 연민의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아무런 기억도 추억도 아니길 바랍니다
어떤 계절에 내린 비
어떤 가을날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쯤의 일로
고요하게 지나간 날들이길 바랍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기도가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당신은 당신의 기도로
나는 나의 기도로
서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살아서 다시는 서로의 빈자리를 확인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서로의 부재가 위안이 되는 삶이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의 손을 놓아준 힘만큼
당신도 누군가의 손을 가장 큰 힘으로 잡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노래는 이제 끝났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
-
-
비 오는 새벽에 다시 읽고 싶다.
읽는 내내 먹먹해지는 마음이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