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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나는 문학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비추어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반성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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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사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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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는 솔직함이 중요하지만 교회의 제단 뒤에서 거대한 진실을 모두 폭로할 필요는 없다. 교회 본당 앞의 널따랑 홀이든 신도석이든 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 최대한 멀리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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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에 환자와 함께하는 건 분명 감정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생명을 지켜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이 일의 신성함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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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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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실감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퇴근하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몇 가지 행정적인 일은 모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내일로 미룰 수 있을까?
안 될 말이지.
한숨이 나왔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계속 회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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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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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것은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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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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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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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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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폴에게 주어진 삶이었고, 그는 그 삶으로부터 이 책을 써냈다. 그래서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지금 이대로 완결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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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과연 죽음앞에서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 저렇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 싶기도하다. 작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이 도서의 끝을 짓지 못했지만 이 자체로도 완결이 된 도서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