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지나고까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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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1.

 [춘분 지나고까지]는 이제껏 읽어왔던 나쓰메 소세키 소설과는 다른 틀을 가진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동일하지만 중간중간 화자가 바뀌면서 다른 이야기를 읽고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춘분 지나고까지] 처음에 실린 나쓰메 소세키의 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전부터 나는 각각의 단편을 쓴 뒤에 그 각각의 단편이 합쳐져 하나의 장편이 되도록 구성하면 신문소설로서 의외로 재미있게 읽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 [춘분 지나고까지]에 대하여 中


  

 나쓰메 소세키는 연작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같다. 요즘에야 연작 소설의 형태를 많이 접할 수 있지만 ( '[춘분 지나고까지]에 대하여'에 실린 각주를 읽어보면 소세키가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신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적혀 있는데 아마 ) 나쓰메 소세키가 살던 그 때는 연작소설 형식의 글이 일본에서는 아주 낯설거나 아예 발표되지 않았던 것같다. [춘분 지나고까지]는 그 당시 나쓰메 소세키에게 있어 새로운 시도였던 것같다.



 


 

 


 2.

  [춘분이 지나고까지]는 크게 첫번째 게이타로가 모리모토에게서 지팡이를 얻게 되는 이야기, 두번째 게이타로가 다구치로부터 직장을 소개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이야기, 세번째 스나가와 지요코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게이타로와 모리모토다. 게이타로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이다. 하지만 게이타로는 구직활동에 그렇게 열성적이지는 않다. 이왕 사회에 나왔으니 뻔한 일 말고 뭔가 좀 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게이타로에게 흥미로운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같은 하숙에 기거하는 모리모토다. 모리모토의 말이 진실이진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모험을 꿈꾸는 게이타로에게 모리모토의 허황된 이야기들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그와 조금씩 가까워져가던 어느날 모리모토는 뱀이 새겨진 지팡이 만을 남겨둔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뒤 모리모토는 게이타로에게 지팡이를 가지라는 편지를 보내온다. 모리모토에게서 받게 된 지팡이는 나중에 게이타로에게 있어서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과 같은 존재가 된다.


 두번째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게이타로와 다구치다. 게이타로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친구 스나가로부터 다구치(스나가의 이모부)를 소개받는다. 직장을 소개받기 위해 찾아온 게이타로에게 다구치는 4시에서 5시 사이에 미타 방면에서 전차를 타고 와 오가와마치 정거장에서 내리는 마흔 살쯤 되는 사내를 정찰하고 보고하라는 묘한 제안을 한다. 게이타로는 호기심에 다구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알 수 없는 남자를 정찰하게 된다. 게이타로는 다구치에게 정찰내용을 보고하면서 자신이 정찰한 남자가 마쓰모토 쓰네조(쓰나가의 외삼촌)라는 사실을 듣고 마쓰모토 쓰네조를 만나러 간다.  마쓰모토 쓰네조를 통해 자신이 다구치의 장난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연유로 다구치로부터 괜찮은 직장을 소개 받게 된다.


 세번째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게이타로의 친구 스나가와 스나가의 이종사촌 지요코다. 스나가의 어머니는 지요코와 스나가가 결혼을 하길 바란다. 하지만 스나가는 지요코와 결혼할 마음이 없다. 지요코를 사랑하면서도, 지요코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에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스나가는 지요코를 밀어내려고 애쓴다. 스나가가 지요코를 좋아하면서도 거부하는 이유와 어머니에게 얽매여서 지요코에게 확실히 선을 긋지 못하는 이유를 독자는 마쓰모토(스나가의 외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3. 


 [춘분이 지나고까지]에서 일어난 일들은 전혀 연관없어 보였지만 결국 게이타로라는 한 인물에 의해 하나로 묶어진다. [춘분이 지나고까지]에서 일어났던 모든 이야기은 결국 게이타로가 새로운 무언가를 탐했기에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난 게이타로 자신이 아닌 남들이 겪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요컨대 인간 세상에 대해 게이타로가 가진 최근의 지식과 감정은 모조리 고막의 작용에서 온 것이다. 모리모토에서 시작하여 마쓰모토로 끝나는 몇 자리의 긴 이야기는 처음에는 넒고 얕게 게이타로를 움직이면서 점차 깊고 좁게 그를 움직이기에 이르더니 갑작스럽게 끝났다. 하지만 게이타로는 결국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 p.346


 게이타로가 보고 들었던 모든 일들은 게이타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결말'부분을 읽고 나면 왠지 모든게 허무해진다. 책을 읽고 있는 나는 게이타로를 통해 뭔가 새로운 재미,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자했다. 헌데 게이타로를 움직이던 이야기가 끝나자, 나를 움직이던 이야기도 함께 끝나버렸다. 게이타로가 그 안에 들어 갈 수 없었 듯, 나 역시 이야기 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야기 속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같았는데, 책을 덮은 지금은 내가 이해한 것이, 작가가 말하려던 것과 어느정도 일치하기는 할까?라는 의심이 생긴다. 마치 나쓰메 소세키가 내게 '내가 아무리 글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사람들의 치심(心)에 대해 이야기해도 내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은 없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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