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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1. 전기3부작
"문"은 "산시로", "그 후"와 함께 나쓰메 소세키의 전기 3부작으로 불리운다. 처음엔 주인공도 다르고 내용도 이어지지 않는데 어째서 3부작인지 의아했지만 전기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문"을 읽고나니 그 이유를 알 것같다. 방황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산시로", 유유자적하던 주인공이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놓아버린 다이스케의 이야기 "그 후", 마지막 대학시절 친구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그 여인과 함께 살아가고는 있지만 마음 속엔 죄를 지었다는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소스케의 이야기 "문", 세 소설에서 주인공의 이름만 통일되게 바꾼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마치 한 인물의 대학시절부터 중년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낯선 대학생활에 적응하던 주인공이 친구의 여자를 알게 되고 사회적 지위와 사랑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여자를 택하지만, 그 후 그의 삶은 목적없이 사는 것에 만족하는 힘빠진 생활이 되어 버린 그런 이야기말이다. "그 후"에 등장했던 병든 친구 부인과 "문"에 등장하는 요오네 역시 비슷한 인물인지라 동일 인물인 것같이 느껴져 더더욱 연결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2. 소스케와 오요네
이 부부를 보고 있으면 삶의 의욕의 전혀 느껴지지않는다. 숨을 쉬니까 살아가는 것뿐이요라는 오로라를 온 몸으로 뿜어낸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 둘의 사랑은 건전하지 못했다. 불륜이었다. 그 당시 일본 사회에서 불륜은 다니던 대학도 다니지 못할 만큼 큰 죄로 치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스케와 오요네는 죽은 듯 조용하게 튀지않고 살고 있다. 괜히 도드러져서 자신들의 부정한 과거가 들통나지 않게. 게다가 둘 사이에는 아이도 없다. 오요네는 세 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유산되어 버린다. 오요네와 소스케는 이 또한 자신들의 부정한 과거의 업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더 위축되었고, 더 조심스럽다.
3.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문"이라는 제목은 나쓰메 소세키가 지은 제목이 아니라고 한다. 현암사판 "문"에 실린 작품해설을 읽어보면 나쓰메 소세키가 "그 후"를 집필한 후 제자에게 다음 작품 제목을 정해달라고 해서 나온게 "문"이라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문"이라는 제목에 맞게 글을 쓴 것인지, 그냥 쓰다보니 글이 "문"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 내용과 "문"이라는 제목은 참 잘 어울린다.
소스케는 야스이를 만나 자신의 잘못을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는 자시의 과거의 잘못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결국 그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도망가버린다. "문"은 과거 자신의 지은 죄를 넘어 앞으로 넘어가기 위해 소스케 자신이 직접 열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소극적인 자세의 오요네도 소스케 앞에 문은 절대로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소스케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소스케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끝까지 암울하다.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p.264
4. 잘못에 갇힌 사람
무단횡단같은 소소한 잘못부터 불륜같은 큰 잘못까지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몇 번씩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뒤 대처 방법을 다 다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무시하고 더 큰 잘 못을 저지르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소스케는 마지막 사람이다. 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가 사죄를 한다고 해서 야스이가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뒤 그 후의 삶을 보람되게 살 것인가 무의미하게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소스케처럼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인간 유형도 싫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소스케같은 인간도 난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