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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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을 읽고 세번째로 "풀베개"를 읽었습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같은 문체를 기대했던 저는 "풀베개"를 읽다 살짝 멘붕이 왔습니다. 뭐지? 이게 뭐지? 이거 나쓰메 소세키 소설 맞아? 이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앞의 두 작품에 담겨 있던 유머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예술이 자리잡았습니다.

 

비가 오면 젖으리.

서리가 내리면 추우리.

땅속은 어두우리.

떠오르면 물결 위,

가라앉으면 물결 아래,

보물이라면 고생은 없으리.

 

물에 빠져 죽은 사람마저도 이렇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소세키의 능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 소설 속엔 하이쿠, 노, 다도, 일본화 등 지극히 일본의 문화가 소설 곳곳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문학적 소양이 너무 부족하여 이 소설을 100%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확 바뀌어버린 나쓰메 소세키의 작풍(특히 봄날을 묘사하는 그 재주)에 놀랄뿐입니다. 같은 작가가 이렇게 다른 작풍을 담아내다니 이것또한 크나큰 재주가 아니겠습니까.

 

"풀베개"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도쿄의 번잡함을 떠나 시골로 여행을 간 화공이 그 곳에서 지내면서 보고 느낀 비인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헌데 여기서 그 비인정이라는 것이 참 아리송합니다. 23쪽 각주에 따르면 비인정이란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일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헌데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여행이 비인정하고 사람이 비인정하고 그런데 각주의 의미를 적용하고자하면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뭔가 각주와 이야기 속 비인정이 일맥상통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막혀버리니 소설 속에 몰입하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비인정이 도대체 뭘까요?

 

내가 이번 여행을 감행한 것은 속된 정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나 화공이 되기 위해서였기에 눈에 들어오는 것을 모두 그림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노, 연극, 또는 시 속의 인물로서만 관찰해야 한다. 이러한 각오의 안경을 통해 그 여인을 들여다보면 그 여인은 지금껏 본 여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을 한다. - p.162

 

위에 발췌한 부분을 읽을때쯤 이 소설 속에서 나타난 비인정이란 우리가 당연시 생각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다른 시점으로 사람을, 만물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정같은 건 다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바라보는 것 바로 그런것 말입니다.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나미씨를 이혼한 여자니까, 중을 쫓아낸 여자니까, 이런 색안경을 쓰지않고, 그냥 나미씨의 모습만 보는 겁니다. 그녀의 사정같은 건 다 배제하고 그녀의 모습만 보는 거죠. 어쩜 그게 작가가 말하는 예술가의 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마지막 그녀의 얼굴에서 "연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화공을 보고있자면 내가 생각했던 비인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비인정에 연민이 필요하다면 그게 비인정인걸까요? 아, 도통 모르겠습니다.

 

책 마지막에 실려있는 작품 해설을 읽어보면 "풀베개"는 소세키가 문학가로서 큰 전화기에 쓴 작품이자 평생 그가 문제로 삼았던 동서 비교문명론 및 근대적 삶과 예술의 문제애 대한 사고가 집약된 일종의 예술가 소설이라고 합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풀베개" 탈고를 전후하여 소세키의 문명관이나 예술관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암울했던 나쓰메 소세키 자신의 음울함이 이 소설 속에 녹아난 듯합니다. 화공은 봄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봄날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참 차갑습니다. 따뜻함이 없습니다. 쌀쌀하기만 합니다.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 속의 유머를 기대한다면 좀 아쉬운 소설이었지만,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에 대해 알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작품이 바로 "풀베개"가 아닐까합니다. "풀베개"는 한 번만으로는 소화가 되는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두세번은 더 읽어봐야 소화시킬 수 있는 작품입니다. 왠지모를 작가의 고뇌가 느껴져서 더더욱 침울했던 제겐 참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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