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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1. 어느 책에선가? 팟캐스터였나? 여튼 폴 오스터는 '우연'을 의도적으로 남발하지만 이야기가 전혀 작위적이지 않다, 우연을 잘 활용하는 작가다 라는 말을 듣고 폴 오스터란 작가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때마침 그의 신간 '선셋파크'가 출간되어 읽어보았습니다.
책 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읽어보면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이야기꿈 폴 오스터'란 소개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역시나 '선셋파크'에서도 '우연'이 등장하더군요. 주인공 마일스와 필러의 만남이라던지 엘런과 벤저민의 만남은 별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우연입니다. 그 우연한 만남을 시작으로 마일스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엘런 역시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사실 우연이 뜬금없이 등장하면 참 시시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폴 오스터의 우연은 오히려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2. '선셋파크'는 6명의 인물이 돌아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각자의 이야기는 맞물려서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되어집니다. 스토리 전개도 자연스럽고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됨에 따라 우린 인물들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고 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함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각 인물들을 바라 볼 수도 있습니다. 마일스 헬러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입니다. 16살 마일스는 의붓형 바비와 말다툼 중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보비를 밀쳐버립니다. 그리고 그 죄책감으로 7년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가족에게서 도망쳐 홀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필라를 만나고 미성년자였던 필라와의 성관계를 협박하는 필라의 언니로 인해 다시 뉴욕, 가족이 살고 있는 도시로 돌아오죠. 뉴욕에서 생활은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 그는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다시 경찰에 잡혀갈 처지가 되고 맙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일스는 다시 7년전 보비를 실수로 죽여야했던 어린 마일스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가 도망쳤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과거로 부터 도망쳐서 흘려보냈던 시간들, 좀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 하지만 경찰의 턱을 후려치는 순간 그 시간들이 다 불필요했던 시간, 허송세월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지금 사는 순간에 충실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마는 거죠. 보비를 죽였을 때도, 빨리 인정하고 죄책감을 내려놓았다면, 그리고 그 순간 순간 감사하며 살았다면 훨씬 나은 인생이 아니었겠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책날개에 저자 소개를 읽으면 "선셋 파크의 폐가에 모여든 청년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출구를 찾으려 노력한다. 나약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고투를 통해 오스터는 무너져 내린 <위대한 미국>의 신화를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희망을 이야기한다. "라고 적혀있는데요, 음....전 마일스에게 어떤 희망을 읽어야할지 갸우뚱해집니다.
3.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에 깔리고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이 책은 미국 역사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헌데 읽다보니 꼭 그렇지많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냥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이야기하고 그들과 전쟁이후에 태어난 세대와 대비되며 각 인물들의 성격을 이해시켜주는 바탕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마일스가 뉴욕으로 돌아와 메리-리 스완을 만나는 장면은 메리-리 스완의 시선에서 쓰여져있습니다. 엄마였지만 아들을 버렸던 엄마, 일년에 한 두번만 엄마 역할을 했던 엄마, 아들의 연락을 끊겼을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엄마. 하지만 막상 아들이 돌아왔을 땐 하늘이 무너질것처럼 걱정했던 척 하는 엄마. 아들을 직접 만나자 어찌할 줄 모르는 엄마. 작가는 둘의 대화에 어느덧 ()지문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만 작가는 ()지문을 사용하는데요, 왠지 배우인 메리-리 스완에 으울리게 이 모든 게 연극이다. 가식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전 이부분에 ()지문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5. '선셋파크'는 정말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스토리, 등장 인물까지 전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작가 폴 오스터에게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 표현 하나하나가 절 사로잡더군요.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작가를 알게 되서 행복한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