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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소녀들이 들려주는 그 여름날의 이야기
여름 장마는 날 우울하게 한다. 그 습함, 눅눅함, 끈쩍끈쩍함은 날 무척 기분나쁘게 만든다. 월요일 아침, 주말 내내 내린 비로 왠지 센치해진 나는 미용실로 달려가 머리 모양을 바꾸고 기분을 UP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파마하고 염색하는 긴 시간동안 가볍게 읽을 책도 가방속에 푹 쑤셔넣었다. 그 책이 바로 에쿠니 가오리의 "수박향기"이다. 머리를 하는 4시간이라는 시간동안 난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책속에서 여름의 꿉꿉함이 전해졌다.
사실 난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을 세권쯤 읽었나보다. 세권 다 그다지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잘 만들어진 로봇이면 좋겠는데 꼭 나사하나 풀린 로봇을 만들어 낸다고나 할까? 그녀가 그리는 남녀의 사랑을 도통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해진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일지......
이번엔 특히 띠지에 적힌 "미스터리한 기억의 조각들', '열한 명 소녀들의 차갑고 애처로운 비밀 이야기'라는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마구 마구 자극했다. 그리고 한장 두장 넘겨보았다. '수박향기'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주인공은 다 다르지만 소녀라는 점, 사건의 배경이 여름의 어느날이라는 두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박향기'속에는 띠지의 말 그대로 어느 여름날 열한 명 소녀들이 겪은 미스터리한 기억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박향기'를 읽고 난 좀 놀랬다. 에쿠니 가오리가 이런 이야기도 쓰는구나 싶어서..... 왠지 그녀의 숨겨진 새로운 모습을 본 기분이랄까? (어쩜 그녀의 수많은 번역서들 중 내가 읽은 책이 몇권 되지않아서 알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겠지만...어쨌든!!) 열한 명이 소녀들이 겪은 미스터리한 기억들, 그 기억들은 정말 있었던 일일까? 아니면 그녀들의 꿈일까? 사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그 몽롱함이 여름의 끈적끈적한 느낌과 묘하게 어울려 내 감성을 자극했다.
에쿠니 가오리는 그 짧은 이야기속에서 소녀들의 성장통을 제대로 그려냈다. 소녀들의 비밀,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스산한 기분이 든다. (선풍기가 따로 필요없다.) 왠지 그 소녀들은 에쿠니 가오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난 에쿠니 가오리의 비밀을 몰래 훔쳐본 것일지도.......
이건 말이지, 새 생명의 냄새야. 뿌리가 썩은 냄새. 초여름이 되면 오래된 뿌리는 썩고 새 뿌리가 나오거든. -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