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제
츠네카와 코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익숙한 거리를 지나다가 처음 보는 길을 발견한 적 있지않나요?

'어,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던가?'하고 자문해본 적 있지 없나요?

그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길이었을까요?

늘상 다니던 길을 걷다가 처음보는 듯한 골목길을 발견한 적이 있다. 어두운 밤이었던 탓에 골목길의 끝은 까만 어둠뿐이었다. 서늘해지는 듯한 느낌에 정신을 차려보니 한참동안 칠흑같은 골목의 끝을 응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며 재빨리 그 길을 벗어났던 기억이 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지나친 그 골목길은 그냥 평범한 골목길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에 본 그 골목길과 아침에 본 이 골목길은 정말 같은 길인걸까?

 

<초제>를 읽고 있으면 <야시>에 담긴 "바람의 도시"속 요괴들만이 지나는 길 '고도'가 떠오른다. 왠지 작가 츠네카와 코타로는 그런 환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끝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그런 믿음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믿음까진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를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초제>의 몽롱한 세계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초제>는 옴니버스형식의 단편집으로 다섯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신비한 이야기를 가득 담은 비오쿠, 그 곳에 관련된 이야기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어지고 있다. '짐승의 들판'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위치한 신비로운 곳이다. 그곳에서는 마음에 고통을 담고 온 사람들이 고통을 비우고 떠날 수도 있고 혹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노라누라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곳이 슬픔, 고통을 버리는 쓰레기통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형태야 어찌되었든......

 

<초제>에 등장하는 이야기중 "쿠사나기" 이야기 역시 신비롭다. 그 약을 먹으면 형체가 바뀌게 된다. 사람이 곰이 될 수도 있고 산양이 될 수도 있다.

애당초 인간은 매일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 p322

처음에 "쿠사나기"는 형태의 본질을 바꾸는 아주 신비한 묘약같은 느낌이었지만 마지막 이야기 <아침의 몽롱한 마을>을 읽고 나니 쿠사나기는 묘약이긴 묘약인데 형태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안에 담고 있는 마음(악한 마음이든 선한 마음이든)을 드러내주는 그런 묘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형태가 바뀌어 다른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감춰두었던 본 모습이 동물의 형태로 그대로 드러날 뿐이라는....

 

<초제>이야기를 읽는 내내 몽롱한 기분이었다. 뭐라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축축한 느낌이랄까. 사실 그의 전작 <야시>엔 좀 못미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 그래도 작가의 상상의 세계의 뼈대는 그대로란 생각에 나름 흐뭇한 작품이다. 환상소설이란 이름에 걸맞게 무척 환상적었던 <초제>, 올 여름과 잘 어울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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