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를 읽고 이 작가에게 폭 빠져버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맘속에 애잔하게 남았던 [아가미]. 그래서 그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고의는 아니지만]속에는 7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비유법을 잃어버린 도시이야기 '마치...같이', 말은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했던가. 말은 그사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 지금 내가 내뱉고 있는 말들이 나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섬뜩해졌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금속주물속에 같혀버린 한 남자 이야기 '타자의 탄생',

무슨 사건이 터지면 당장 어떻게 할꺼처럼 모두들 흥분하며 이야기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사그러지고 나중엔 관심밖으로 밀려나버리는 수많은 일들, 우린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너무 쉽게 잊어 버린다.

 

- 구멍은 어디에나 있어요.

 

남자의 마지막 말은 '나쁜일은 나만 당하지 않으면 괜찮은거야.', '나쁜일은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야.'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같다.

 

말한번 잘못했다가 죽은 유치원교사 이야기 '고의는 아니지만', 나편한대로 베푸는 호의는 상대방에게 수치심과 모욕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보여주기식 배려는 이도저도 아닌것임을.....

 

사람을 죽이는 새떼 이야기 '조장기', 그녀는 미친 등록금을 감당해가면 살고 있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 외모지상주의의 희생양,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전부 담고 있다.

 

- 그때 게걸을 떼고서도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살점을 입에 문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끼룩거렸는데, 나는 조금 전까지 '누군가'였을 그 살점이 승천하는 걸 바라보며 부럽다, 부럽다고 중얼거렸다.

 

그녀의 밑바닥인생은 부조리한 사회속에서 상처받는 우리들의 모습인거 같아 안쓰럽다.

 

참다못해 아이를 세탁기속에 넣어버리는 엄마이야기 '어떤 자장가', 가정형편과 육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중 어느 한가지도 포기하지 못하는 엄마란 존재의 갈등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그녀의 잔인한 상상이 용서되는 건 아무래도 나도 엄마이자 여자이기 때문인듯하다. 

 

감정을 봉인해버린 남자 이야기 ' 재봉틀 여인', 7편의 단편들중 가장 맘에 들었던 이야기다. 타인에 의해서 혹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우린 우리의 감정을 숨긴다. 그도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봉인했다. 그는 피해자일까? 아니면 결국 자기 자신을 학대한 가해자일까?

 

성욕을 느끼면 몸속에서 곤충이 튀어나오는 남자이야기 '곤충도감', 여러 사랑의 형태가 존재하고 '곤충도감'은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다만 인정하기 싫은 사랑의 모습일뿐. 

 

7편의 이야기 하나하나에서 구병모식의 어두운 상상력이 진하게 묻어난다. 다 읽고 나서 쉽사리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것은 묵직한 무언가가 내 맘속에 남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암울한 이야기가 싫지만은 않은것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