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믿을 수가 없었던 세월속에 살았던 소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소설 [소현]. 세자가 느끼는 고독의 깊이가 너무 깊어 읽는 내내 맘 한구석이 아려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소현세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세자의 아우 봉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청으로 끌려갔으나 죽지못해 살아야 했던 여인 흔과 석경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 험한 시대속에서도 살아야했던 민초 막금, 만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하께서 적의 땅에 너무 오래 계셨음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 자신의 나라에서 떨어져살아야 했던 소현세자, 그건 자신의 의지는 아니였다. 세자라는 자리가 그를 적의 땅으로 내몰았고 그의 신하와 아비가 그를 버렸을 뿐이다. 그러나 잠시 환국하여 돌아온 그곳엔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 자신의 믿음을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계략에 휘둘려 아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아비의 차가운 시선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였다. -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항상 말을 아껴야만했던 세자가, 아비앞에서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세자가 불쌍하고 가여워 눈물이 났다. 적국의 땅에서 적국이 번성하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슬픔을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접어두고 조선의 앞날을 기약했던 세자였지만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소현세자. 만약 소현세자가 살아 왕이 되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좀 달라졌을까? 대의명분만을 중시하고 실학을 기피한 사대부들을 물리치고 번성하는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까? - 허나 입을 다물라 이르라. 살고 죽는 것은 그다음 일이라고도 이르라. 그것이 그의 운명이라 하라. 석경역시 신분만 다를뿐 똑같이 아비한테 버림받은 신세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 충의가 무엇인지.. 마지막까지 죄스럽게 살아야했던 석경의 신세역시 한탄스럽다. - 어디에서나 아비가 아들을 내주었다. 그 시대는 정녕 무엇을 위한 시대였을까? 아비가 자식을 내주어 자신의 삶과 가문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던 거짓된 세상이 아니였던가. - 내가 살겠다 말하거라. 혹시 죽게 되어도 그것이 내 뜻이 아니라 말하거라. 허니 편안하게 가시라 말씀드려라. 내게 그분을 살릴 힘이 없으니 그것이 한이다 말씀드려라. 그러나 내가 이제 세상을 알았다 또한 말씀드려라. 저들이 저들의 죄로 살고 죽는 것을 내가 두 눈 뜨고 다 보리라 말씀드려라. 그 험하고 모진세상 죽지못하고 세자가 자신들을 다시 바른 땅으로 인도해주리라 믿었던 흔, 역시 결국엔 아비에게 버림 받은 슬픈 여인. 결국엔 시대를 잘못 타고나 영악해질 수 밖에 없었던 가여운 여인의 이야기또한 내맘을 아프게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명분때문에 아비가 자식을 버려야 했던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누구도 믿지 못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가여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근래 읽었던 역사소설중에선 최고였다. 다읽고 난뒤에도 그들의 고독과 상실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소현]덕에 오랜만에 마음이 짠해지는 감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