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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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특별하다고 할 수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들. 주간지  뉴스에 잠깐 나왔다가 그야말로 75일 만에 사라지는 사건들. 그런 일상들로 이어진다. 그런 일상들은 또 다른 사건이 생겨나면 잊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부조리한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덮혀지기를 기다리며  또 다른 특종감들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합리화를 시킨다.
아쓰코의 남편인 도의원 히로키의 부적절한 발언과 부정청탁도 그렇게 유야무야되고,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겐이치로의 약혼자 살인 문제 역시 그렇게 흐지부지 끝난다.
화가 아사히나 다스지의 실력을 알아주지 못했던 아유미의 안목도 약간의 후회로 매듭지어진다.
ips 재생의료 연구(혈액에서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낸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기도 한 한 아이가 만들어진다)를  하고 있는 사마야 교수의 실적도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끝난다. 노벨상 수상자 말랄라 이야기도 역시 그렇게 슬쩍 지나가 버린다.
그나마 각자의 이야기는 서로의 연관성도 거의 없는 듯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1장, 2장, 3장을 읽으면서 사실은 지루함을 느꼈다.

 

그러나 4장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반전이 시작되며 내려오던 눈꺼풀이 활짝 열린다.
앞의 3장까지의 문장들 틈에 숨어있던  이해 못할 말들이 속속 그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유미 모녀가 들어갔던 “불감의 탕“에도 예고된 의미가 숨어있었고, 아유미의 집 현관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았던 쌀과  술. 슈퍼마켓  카트에 넣어져 있던 통조림들에 대한 미스터리도 풀린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사람과 사건들이 모두 연관된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기가 잘못됐다고 알아챈 순간, 그걸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잘못되지 않은 게 될까. 어떻게 하면 자기가 옳은 게 될까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104p)
하지만  나에게는 잘못된 내가 옳아 보이는 거야(358p)
그때 바꿨으면 좋았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491p)

 

4장은 70년을 지난 2085년으로 가면서 드디어 작가의 놀라운 SF 적 상상력으로 미래를 그린다.
사마야 교수가 연구했던 ips 재생 의료 연구 결과로 태어난 사인과 로봇과 일반인간들이 공존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고도의 망막 스캔 기능이 있는 헌병 로봇. 집안일을 맡아서 해 주는 로봇. 군인 로봇들의 세상.
자력 방식 부유(浮遊) 도시가 존재하고,
쉰 살이 안 넘으면 좀처럼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난자 동결 준비는 기본으로 해 놓는 시대가 된다.
개인마다 귓불에 id 칩을 장착하고 언제 어디서나 개인의 id가 읽히는 시대
에어로 버스, 에어로 모빌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시대.
로봇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tv와 cc tv는  홀로그래피로 언제 어디서나 불러올 수 있고,
과거와 현대를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시간여행이 가능한, 그런 환상의 시대를 그린다.
그러면 과연 그런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세계 전체가 곳곳에서 사막화되고 있고, 전국적으로 70만 명이나 되는 사인들은  다만 일반인을 위한 존재이며 언젠가는 일반인과 같이 동반 자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사인들은 일반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로봇과는 다른 또 다른 로봇일 수밖에 없다. 해서, 사인들은 자유를 찾아 다른 시대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결혼 생활이란 어느 쪽인가가 인내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현대 인간에게는 인내가 가장 서투르니 가능할 리가 없을 테고, 결과적으로 현재 상황에서는 인내할 수 있는 사인이 상대로 선택되지만, 앞으로 로봇의 성능이 좀 더 좋아지면 그 역할도 로봇이 맡게 될지 모르지... (485-486p)

 

이 책에서는 유토피아를 꿈꾸던 우리의 미래는  삭막하다 못해 섬뜩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그때, 아니 지금 바꿔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손을 써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현재가 어떠한 미래로  이어질  것인가?
자기 가치관에 대한  정당화에만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화끈하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그리고 한 자루의 펜으로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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