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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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김두영은 친일파다. 춘천에 일본인들이 늘어나면서 김두영은 발 빠르게 앞 두루에 정미소를 차리며 자리를 잡는다. 싸전에 건어물까지 다루는 가게를 내면서 기반을 다진다. 거기에 금광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친일파라는 손가락질과 곁눈질과 눈흘김 속에 살아간다는 자신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징용이란 올무는 비켜갈 수 없었다. 두 아들 중에 맏 아들을 대신해서 작은 아들을 징용에 내 보낸다. 그가 지상이다.
지상은 갓 결혼하고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생긴다. 그런 아내를 두고 지상은 징용에 동원된다.
드디어 군함도에 이르고 많은 조선인들과 함께 지옥의 생활이 시작된다.
지상과 그 동료들의 지옥 생활을 통해서, 작가는  27년간  발로 뛰어서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고증하고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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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945년까지 20년간 일본 군함도는 지옥의 섬이다.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끼는 거대 군수기업 미쯔비시의 자본 아래 놓여있는 항구도시다. 거기로부터 18.5킬로미터 떨어진 섬 타까시마에서는 일본 최대의 해저 탄광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미쯔비시 타까시마 탄광이 있고 다시 이 섬에서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 하시마라는 무인도이다. 마치 바다에 떠있는 군함과 같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일본인들이 모자라는 광부들을 조선인으로 보충한다.
강제징용이다. ‘모집’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훑어가 탄광에 처넣는 횡포를 감행한다. 심지어는 나이 어린 소년까지 강제로 끌고 간다.
그들은 죽음보다도 더 처절한 해저 탄광의 생활이 시작된다. 열악한 작업환경, 물마저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식생활, 아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하 갱도, 매일처럼 이어지는 사고, 폭발, 질병, 죽음, 심지어는 견디지 힘든 사람들이 선택하는 자살.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한 자들의 죽음, 고문, 처형........ 그야말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지옥의 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만행. 그에 따른 조선인들의 나라를 뺏김으로 인한 굴욕과 서러움, 마치 짐승인듯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노예 같은 삶.  그리고 전쟁의 불합리성, 지옥과 같은 비참함, 파리보다도 하찮게 취급되는 조선인들의 목숨,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 살아남기 위해 친일을 해야만 했던 조선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도 싹트는 사랑과 우정, 민족애. 그것들을 이 책은 고스란히 담아낸다.
결국  패일의 현장, 피폭의 현장은 처절했다. 그 처참한 현장까지 작가는 여과 없이 그려낸다.
2015년 8월 원폭 사몰자는 16만 8,767명으로 조사 되어있다. 이 숫자는 해를 거듭하며 늘어날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은 수면 위로 보이는 ‘얼음덩어리’일 뿐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한국인 피폭자들이 살아야 했던 비참한 실상과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대두하고 있는 피폭 2세 3세의 문제까지 수면 아래 도사린 얼음덩어리에는 단순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점들이 난마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 배경에 국제질서와 강대국의 논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 복원’을 위한 제 작업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기록과 진실의 주춧돌 위에 상상력으로 세우는 서사적 건축으로 후세의 기억을 위하여,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를 위하여,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의 적확한 자리매김을 위하여, 과거사를 그리는 이 작업은 이어질 것이다.
 

  

나가사끼는 나에게 조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잊지 않으리라. 나가사끼는 나에게, 나라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나가사끼에서의 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걸 이처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거다. 이제 돌아가서, 젊은 아이들을 가르치자, 내 나라 글, 내 나라말, 내 나라 풍습과 역사를 가르쳐서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나라가 있음을, 아니 되찾아야 할 조국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겪은 고난을 가르치고 기억하게 할 거다. 어제를 잊은 자에게 무슨 내일이 있겠는가. 어제의. 고난과 상처를 잊지 않고 담금질할 때만이 내일을 위한 창과 방패가 된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2부 468 p)

 

그렇다.  그들이 그토록 크나큰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던 “조국”이라는 단어. “나라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그 어마 무시한 화두를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이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깨달을 수가 있었다. 행운이라고 하기엔 그들에게 너무나 송구하고 마음이 시리다.
은폐의 바다에 떠 있던 폐허의 섬 군함도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하시마탄광의 유구'라는 이름으로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하나로 등재되었다는데 대해서는 정말 분노할 일이다. 일본은 그 영광 뒤에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의  눈물과 분노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꼭 명기해야 마땅할 것이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조선의 후예라면  마땅히  기억 해야할 어제이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이들이 한번쯤 꼭 읽어야 될 책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적인 역사라서 다소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 했는데 생각외로 너무나 술술 읽혀졌다. 또 거의 5 페이지 정도 마다 나오는  재미있는 속담들은 마치 속담 사전을 보는듯 했다. 또 지역 사투리와, 고통중에서도  위트를 발휘하는 대화체들이   여유있는 우리 민족성을  느끼게 했고 가독성과 재미를 더하게 했다.

 

산다는 것, 사랑하는 것들과 곁에 있는 것,
정겨운 것들과 기쁨도 단란함도 함께 하는 것,
햇살이 비껴드는 방과 맨드라미가 자라는 뜨락이 있고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 것,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었던가. -중략-
 이제 나는 그 소중함을 안다.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을.
사람과 사랑이다.
이제 안다.
 마지막까지 기대고 부둥켜안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며,
사람 사이의 사랑이다.(4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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