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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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209p)

                

소통 부재.
그들 사이엔 그렇게 홀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리아나 파라치 같은 기자가 되어 저명인사들과 이제껏 하지 않은 방식의 근사한 인터뷰를 하고 싶던 아내. 그러나 대부분 해 내지 못했고 그러나 깊이 상처받지 않았고 훌훌 털었다.
그런 그녀의 성격에 오히려 매력을 느낀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오기는 근 질기게 무언가를 추구하고,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결국에는 성취하고, 한길로만 살아온 것을 자부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그들은 의지가 빼어난 나머지 박약한 의지를 손쉽게 비웃었다. 운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비난했다. 사소한 우연의 연쇄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집과 독선이 지나쳤고 자신의 자부가 폭력이 된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으며 남들에겍 늘 가르치는 투로 말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자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비웃었다. 간혹 시혜적인 태도로 관용과 아량을 베풀었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제 삶의 여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오기는 그런 사람을 잘 알았다. 바로 오기의 아버지였다.(20p)

그런 그의 아버지는 기껏해야 선생질이나 하려는 오기를 꾸짖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비아냥거리고 그런 아버지를 더욱 쪼잔하고 볼품없이 만들고 약이 올라 씩씩대는 아버지 앞에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어머니가 오기는 근사해 보였다.
결국 어머니는 자살하고 아버지는 결혼 3년 전에 대장암으로 죽는다.
아내에게는 그 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존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장모는 곱고 단아했다.
교양 있고 세련되고 예의 바른 미소를 띠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늘 밖으로 나도는 남편 대신 딸에게 모든 걸 쏟아붓는 엄마였다.
장인은 배사에 한탄과 타박을 일삼는 성격의 교사였으나 동료 교사와의 연애사건으로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직을 한 냉랭한 분위기가 도는 부부였다.

그들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오기 부부에게도 언젠가부터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기와 아내는 다소 쪼들린 생활을 했고 아내는 결국 어떤 책도 출간하지 못했고 집필을 포기했다.
얼마 후 그들은 타운 하우스에 위치한 마당이 넓은 주택을 마련했다.
정원에서 열린 오기의 대학 동료들과의 파티에서 오기와 제자와의 관계에 아내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아내는 사사건건 오기에게 트집을 잡으며 그들 간의 홀을 메꾸기 위한 방편으로 정원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에 집착을 보인다.
어느 날 아내는 "고발문"을 쓰기 시작한다.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 운전하는 내내 침묵이 흐른다. 아내는 헤어지자고 한다. 아내는 오기의 모든 걸 잃게 만들 작정이라고 했다. 오기에게 주먹질을 했다. 오기의 핸들 잡은 두 팔을 잡고 흔들었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 시야를 가로막은 커다란 앞차가 구멍처럼 보였다. -중략- 편안해졌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마음이 놓였다. " - 중략- 오기는 살아 남고 아내는 죽었다.(185p)

사십 대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완벽하게 실패하는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다.
마흔은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이였다.(77p)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린다는 것만큼 사십 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 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 중략- 그러므로 사십 대는 이전 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78p)
                

식물인간이 된 오기.
그 처절한 삶이 리얼하게 녹아있다.
오직 남아있는 가족, 장모와 사위. 사위를 돌보는 장모, 그는 정성을 다 하여 사위를 간호하다가 어느 날 딸의 글을 읽는다.
고 발문.
장모는 그 고 발문을 읽고 정원에다가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다.
그즈음 사위는 왼쪽 다리와 손에 감각이 살아난다. 상황을 감지한 오기는 사력을 다해 집에서의 탈출을 시도하는데...

가장 솔직해야하고 신뢰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부부, 그들로 인한 가정.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사랑으로 맺어진 그들 사이엔 어느새 틈이 생기고 구멍이 생긴다.
다른 가치관, 다른 느낌, 다른 성격. 점점 깊어지는 불신과 이질감의 심연.
그 <홀>을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지,
아님. 영원히 추락 할고 말 것인지,
그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숙제가 아닐까?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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