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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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이유 없는 세상의 반대편엔, 이유가 끝없이 있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행복조차도 밀어내기만 하고 있었다. -226쪽-


4월의 어느 오후, 앞 마당에 늘어져 누운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담담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자기 고백 같은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어느 첫눈 펑펑 내리던 날 태어난,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윤설'이다.

엄마의 목숨과 바꾸어 태어난 그녀는 그리 요란한 행복도, 그리 대단한 슬픔도 없는 듯, 이를 테면 소설의 구성으로 볼 때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건'. 그 절정의 장면이 없는 양, 그렇게 소설은 끝까지 흘러간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면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투성이고, 절정투성이다.

너무 착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어이없어서인지 그녀는 세상과 맞서지 않는다.

그래서 비로소 속으로 곪아 터진 것일까?

그저 어느 소녀의 조용한 일기, 또는 성장기 같은 나지막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주인공 '윤설'이다.

절정에서는, 사건에서는 커다란 불행 앞에서는 오히려 말을 멈춰버린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놀라지 않는다. 화내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 호들갑 떨지도 않는다.

그저 그루잠을 자듯, 그렇게 다시 눈을 감는다.

약하디 약한 한 여성이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 프랑크의 철학처럼 '의미를 찾아야' 했을까, 아니면 알베르 카뮈처럼의 철학처럼 ' 반항하는 존재로 살아야 했을까.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은 코나투스 때문이라고 했다.

코나투스(생명에의 의지)는 모든 생명체에 내재되어있는 본질이라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무슨 큰 의미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의미에 대한 반항도 아닌, 그저 태어났으니 사는 것뿐이다. 즉 <코나투스>에 떠밀려 살아가는 것 같다. 다만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할 뿐이다.

'윤설'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상상의 세계, 몽환의 세계에 빠진 것은 역시 나름대로의 현실도피, 내지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어찌 보면, 현실과 몽환의 세계를 오가는 여인의 목소리는 정말 그 어떤 외침보다도 강 열했다.

그 소리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비로소 들린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날것의 진실, 가장 강한 반항일 것이다.

진실은 나팔 불지 않는다. 진실은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강한 외침이라는 것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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