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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4월
평점 :

선과 정의의 이름으로 가치관은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입니다. -중략-
독자 여러분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신념을 믿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에서 나름의 의미나 화두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362쪽 /작가의 말

선이란 무엇인가?
악(惡)이 아닌, 선(善)에 대한 고찰이다. 소름 끼치도록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 그 밑 바닥을 들여다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생각난다.
"이타성은 도덕적 고양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이 아니라 그저 동물적인 본성에 따른 작용에 불과하다." (출처 : 지식편의점/이시한)
그 본성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려는 이기심이라는 말이다.
이 책의 주장도 그런 차원의 주장을 펼쳐간다. 아니 한 차원 더 나아가서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이타심이라는 것. 선과 정의라는 것, 그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이 결국 그 밑바닥에는 이기심이 존재한다고...
본능만 가지고 있는 짐승과 구별할 수 있는 것. "사랑"이라는 그 이름으로, 알량한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인간은 얼마나 많은 자기만족과 이기심을 포장하고 있는지.

중심인물인 외과의사 '범준'은 의료사고로 한 생명을 죽게 만든다. 그러나 그 죽은 생명의 장기로 3사람의 목숨을 살린다.
과장은 범준의 실수를 비밀에 부치고 세 사람의 생명을 살린 사실만 세상이 떠들썩하게 드러낸다.
"의술이 인술이라고? 개뿔. 의술은 기술이다. 수십,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발판 삼아 지금 까지 발전한 거야. 알량한 도덕 나부랭이가 의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없어, 한 명을 실수로 죽이면 그렇게 배운 기술로 열 명을 살리면 돼. 그게 의학의 도리지. "-58 쪽-
범준은 자책감에 괴로워하다가 아프리카 오지 의료 봉사원을 자원하여 나간다. 봉사활동이라는 포장을 한 도망이었다. 그런 자신의 민낯을 보며 범준은 또 괴로워한다.
국내에 들어온 범준은 심장이 필요한 아들을 위해서 마침 아무도 알지 못하는 뇌사자를 방치할 수도 있었지만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 하려 뇌사자를 소생 시키고 아들을 포기한다.
그것조차도 의사로서의 알량한 도덕적 자부심, 일종의 이기심이자 자기만족, 때문이라는 자신의 민낯을 보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끝내 자살자들의 피부를 벗기고 장기를 떼어내고, 결국은 살아있는 박 신부의 장기를 떼어내는 불법적인 일을 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한 사람을 희생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살린다"라는 이를 태면 <공리주의>를 택한 것이다.
죽고 싶은 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으니까. 그것이 불법이어도 상관없다. 오로지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도 대의를 위해서는 작은 사실은 눈 감지 않은가? 신神도 결국은 <공리주의>이니까.
"이일에 대해 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신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죠. 전 그때 말씀하신 신과 같은 입장입니다. 무엇도 판단하거나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그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희생하는 이의 부탁을 이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게 제가 택한 좁은 길이죠."-283쪽-
"긴급 수호 프로그램은 호응이 좋을 뿐만 아니라, 창고 안에 쌓아둔 응급 구호 물품 재고를 털고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 넣을 기회였다. 이런 실적은 나중에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탈 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누구도 이들이 누구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미개한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어떤 끔찍한 일에 대해 도와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했다. 그 우월감이 이 동정심의 실체였으니까."-187쪽-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는 건 생명체로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신을 믿는 것도 일종의 도망일 뿐이죠. 증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존재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좋은 도피 아닙니까!"-107 쪽-
몇 마디의 고백과 몇 마디의 참회와 몇 마디의 기도로 이런 일이 용서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범죄였다. -27쪽-

기억해둬. 우리가 한다는 위대한 선행 역시 별다를 거 없다는 거야.
인간의 선의란 고작 상황과 본능에 휘둘리는 금박일 뿐이라는 거지.
물론 금박도 금이긴 하지만.
3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데니소바인, 등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유일한 종.
3억의 동료를 물리치고 이 땅에 태어난 유일한 존재.
오늘 하루 평균 183,835명의 사망자 속에서 살아남은 존재.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자리에 살아남았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며, 어쩌면 끔찍하리만치 이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니까 우리는....
알량한 금박일지언정 금박을 입히고라도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금박이라도 입히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이란 더욱 끔찍해질 테니까
그 얇은 금박이 우릴 인간으로 만든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 금박이 바로 우리를 사람일 수 있게 하는 전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