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그림자 - 무의식의 신학
신은희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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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라는 분석심리학자 융(C. G. Jung)의 고백을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인 작가가 지난 몇 해 동안 신과 신성에 관해 묵상하며 출간한 신학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무의식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마음의 ‘동시성’을 창출한다. 무의식의 꿈은 신성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우주심(cosmic mind)’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과정적 흐름은 잃어버린 ‘내 안의 신성’을 불러낸다. 신성은 새로운 인격의 원형으로 재탄생된다. 사랑의 신, 지혜의 신을 품은 신성한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프롤로그-

총 8 개의 장을 통해서 '내 안의 신성'에 대한 담론이 시작된다.

제1 장 무의식과 원초적 공감

존재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개성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내 안의 신’과 만난다. 결국 인식할 수 없는 영원한 의미는 신비와 하나의 전체성을 이룬다. 인간이 신이 되어가는 여정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경이로운 영적 진화이다.

-14P-

인간의 원초적 공감은 태초의 인류로부터 전이되어 온 영적 본능이며 신의 원형이다. 무의식의 세계는 바로 심혼의 원초성이 감춰져 있는 신과의 만남, 신성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우주의 생성 원인이다.

융은 그의 무의식의 기록인『레드북』을 남기는데 1장에서는 이 책을 예로 살펴본다. 이 책은 대극 합일의 상징으로 아브락사스의 신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융은 ‘제2의 인격’ 즉 ‘내면의 신’으로 그 이미지를 ‘필레몬(Philemon)’이라고 부른다. 융은 필레몬과의 환상의 대화를 나누며, 확장된 무의식의 강렬한 힘을 느끼게 된다. 또 말년에는 임사 체험을 하면서 ’죽음 이후의 생‘을 말하게 되는데 그는 죽음을 통해 삶의 환희를 역설한다.

또 집단무의식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원형의 힘은 강렬한 옷 토의 누미노제( 고도의 종교적 체험)의 체험으로 신적 표상을 지닌다. 누미노제의 체험은 무의식 세계로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몸과 정신과 영혼이 비로소 하나의 전체 정신이 되는 자기실현으로서 무의식의 신학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제2 장 감정과 공감의 누미노제

감정과 공감은 본능이다. 인간이 무엇을 느끼고 공감하는 것은 즉각적인 무의식의 반응이다.

신에 대한 감정과 공감도 초기 인류사 회로부터 각인되어 온 오래된 무의식의 표현이다.

공감 신학의 한국적 모티브를 기층 종교 문화인 샤머니즘과 기독교와의 대화를 통해서 살펴본다.

고통의 의례화 과정을 거친 샤먼은 강신 체험을 통해 누미노제의 현시화 원초적 공감을 극대화한다.

신내림→내림굿(개인적 한을 통곡을 통해 아픔과 회한을 모두 분출한다.)→소명의식→다신 적 성격→누미노제의 절정을 체험→샤먼 인격을 갖춰 새로운 신적 소명(치유성)을 완성.

※용담유사(龍潭遺祠)→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경험한 누미노제는 샤먼의 강신 체험과 유사한 형태로 묘사된다.

예수의 누미노제는 그리스도인의 성스러움의 지표가 되며 영적인 매혹 성과 치유성으로 나타난다.

구성원 간의 초월감. 권능감. 연대감의 감정을 형성하여 현실 세계에 기여하도록 이끈다.

궁극적으로 공감의 에클레시아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나누고 치유하는 제의적 화합과 신성한 공감으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삶의 누미노제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작은 신’이며 ‘소우주‘가 됨으로써 영혼에 새겨진 신성의 씨앗은 끊임없이 대우주인 신의 본체를 향해 이끌리고 매료되는 것이다.

-77p-

제3 장 우주의 숨결 : 기와 영의 에로스

우주의 숨결인 영의 기운은 우주 만물에 편재해 있다.

영과 기의 에로스는 우주의 숨결이 신과 우주의 법칙에 뛰라 개별 문화를 통해 펼쳐 나오는 프뉴마톨로지의 신성한 상징이다. 프뉴미톨로지는 우주의 숨결이 잠긴 무의식의 총체적 경험을 섬세하게 연결하는 신성한 은줄(silver cord)이다. 영적 필라멘트의 점화로 영의 빛은 응집과 취산, 초월과 내재, 탄생과 소명의 순환 속에 ‘초월의 신성’을 육화하며 매 순간 탄생하고 현현한다.

기독교 전통에서 루아흐(생명의 근원)와 프뉴마(우주 총체적 개념인 프뉴마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 신학 시대를 거치면서 ‘예수의 영’으로 제한된다.)는 신의 뜻에 따라 우주 만물에 거하며 신과 인간을,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우주의 숨결이다. 신은 만물 안에 존재하고, 만물은 신 안에서 생동한다. 성령은 창조자와 창조물의 세계를 연결하며 신적 에너지를 통하여 인간과 사랑의 교재를 나눈다. 삼위일체의 영은 존재론적인 구조가 신-예수-성령인 신학적 틀 속에서 사회성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성령은 지극히 종말론적이다. 이러한 측면은 기독교의 영의 인식이 여전히 배타적인 하기오스의 영 개념에 제한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기(氣)는 우주의 숨결을 동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기(至氣)는‘지극한 기운’, ‘기고한 기’라는 의미이다

온 우주 만물이 하나가 되어 깊은 사랑을 하고, 소멸하고, 다시 탄생한다. 성스러운 영, 누미노제의 근원은 그토록 찬란하다.

제4 장 호모 엠파티쿠스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rthicus)란 ‘공감적 인간’, ‘샤먼’, 혹은 ‘샤먼 의식을 지닌 자’를 의미한다.

경제학자 리프킨(J. Rifkin)은 인간 본성의 특징을 ‘공감하는 종(種)으로 정의한다.

치유와 통합을 향한 미래 사회의 새로운 종교적 인간상을 ‘호모 엠파티쿠스’로 정의하고, 이를 위한 대안적 영성을 인간의 의식 변형을 통한 네오 샤머니즘(neo-shamanism)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네오 샤머니즘(인간 무의식의 세계를 공감 능력으로 확장)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적 현상을 해석하는 ‘방법론’이며 현대사회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증오. 대립. 갈등의 문명을 화해. 치유. 통합의 문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공감적 인간학을 제시한다.

네오 샤머니즘은 ‘믿음’이나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 변혁’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아의 영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를 동시에 추구하며 다양한 종교. 문화. 전통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영성적 하이브리디티의 특징을 잘 살려야 될 것이다.

제5 장 샤먼의 전설

『샤먼의 전설』은 몽골 문인 아요르잔이 바이칼 올혼섬을 찾아 그곳에서 직접 경함한 샤먼 이야기를 작품화한 것이다.

작품의 화두는 ‘고통’이다. 아요르잔은 마치 신병을 앓는 샤먼의 상태와 같이 내면의 지독한 고통을 품고 무작정 고향을 떠나 바이칼로 향한다.

『샤먼의 전설』은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고수했던 신적 절대성의 영역과 경계를 상대적으로 희석하면서 샤먼 경험의 인간 주체를 회복하는 신성과 인성의 합일,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강조하는 네오샤머니즘의 영성 세계를 추구한다.

▶네오샤머니즘의 영성적 특징/ 고통의 영성, 인간 주체적 변성 의식, 자아 변혁과 빛의 영감, 신성의 각성, 사회 정치적 저항.

『샤먼의 전설』에 나타난 고통의 주체는 개념의 무아를 향한 자아 비움의 원리가 아니라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경계와 무게를 분명히 인식하며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관통함으로써 타자적 존재와 일체 되는 고차원적 무의식의 원리이다.

제6 장 태양 춤과 에코토피아

북미 원주민의 태양 춤은 무의식의 춤이다. 춤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만나는 접촉이며 신성으로 이끄는 영적 충동이다. 또 식민 지배를 상징했던 백인과 기독교 교회에 저항하는 상징 의례이기도 하다. 태양 춤 축제의 절정은 비전 탐구(독백기도)와 육신 공양(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살점의 일부를 헌사하는 예식)으로 끝난다. 이때가 서약자들에게는 대 신령을 맞이하는 ‘신체험’의 순간이다.

태양 춤 축제에서 체험되는 창조의 영인 대신령은 위대한 통합의 생명력으로 존재한다. 자연과 인간은 대신령을 공유하고 함께 나누는 친족 관계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베리가 강조한 ‘기독교 애니미즘’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원주민의 신학은 기독교 애니미즘을 추구하는 에코토피아의 영성 신학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즉 그들에게 춤은 신학이다.

제7 장 공공 기복

인간의 무의식에는 복을 구하는 기복의 마음이 잠재되어 있다. 기복적 성향은 종교의 가장 부정적인 단면으로 비판받아 왔다. 그런데도 복을 구하는 인간의 마음은 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존재론을 구성한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본능적 정신 작용이라고 민영현은 설명한다. 즉, ‘태고의 순수 원형’이기도 하다.

수운 최재우의 『용담유사』는 타자와 사회를 향한 연민과 개혁 정신으로 승화되어 동귀일체의 공공 기복 정신으로 나타나며 이는 사회적 구원 서사를 이루는 신성화 단계로 본다.

제8 장 타나토스의 신학

지젝(S.Zizek)은 타나토스 신학을 제시한다. 그의 타나토스는 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니체 이후 신의 죽음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사신 신학’이다. 그는 헤겔과 셸링의 철학을 표본으로 삼고 전통적인 마르크스의 사유를 차용하며 라캉의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며 불완전한 신, 모순적인 신개념이 오히려 현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더욱 철저히 기독교 정신으로 회귀하도록 만드는 신학적 추동력임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초혼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융의 심리학을 근본으로 시작한 인간 무의식에 대한 고찰.

무의식의 의식화, 의식의 무의식화, 결국 신과 자연과 인간은 함께 하는 존재라는… 종교학이다.

왜 기독교는 배타적인가? 이제는 실재 속에서 함께 이 우주를 공유해야 할 것이다

유일신에 대한 신앙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구절구절이 흥미롭고 신선하지만 약간은 어리둥절하다

어쨌든, 신은 저 너머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처럼, 바람처럼, 온 우주에 스며있는 존재라는 것만 다시 생각해본다.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든 그 신을 향하여 나가는 만물의 작은 신, 소 우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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