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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도서제공 #서평단
가을, 만물이 영그는 계절과 닮아 일곱 편의 단편이 모두 알차고 묵직하다.
각기 고유한 시선과 문체로 풀어낸 세계관 속에서, 개인의 삶과 연결된 시간, 사건, 관계에 관한 사유를 하게끔 이끈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불투명한 여과지에 덧대어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가깝게는 작년 12월 계엄령부터 멀게는 80년 사북항쟁을 다루거나 방계혈족 간의 애증, 모녀의 갈등에서부터 먼 타국의 학살과 전쟁이 있고, 단순한 우정과 부적절한 사이의 경계, 삶에 깊숙하게 들어온 AI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모두 현실감이 생생하다.
작품마다 읽는 시간과 품을 들여야 했다. 재미와 도파민을 논외로 하고, 속마음 어딘가를 툭 건드리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 단편들을 읽기 전과 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과연 나는 오늘도 나를 포함한 그 누군가에게도 아무 “문제없는, 하루“를 살아냈는지와 같은 질문,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을 실감하는 순간을 마주했다. 한국 문학을 가장 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답게 유려한 문장들도 많고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이 전부 탁월했다.
특히 아래 세 작품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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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미, 「김춘영」
구술자와 면담자로 마주한 자들을 이야기의 주축으로 삼는다. 배경은 산중에 위치한 구술자의 집, 폭설로 외부환경과 단절된다. 그러나 곧, 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등산객 부부와 대민지원 나온 군인 둘이 들이닥치면서, 구술자-면담자 간의 관계의 팽팽함이 느슨해지고, 정제된 상태였던 구술자 김춘영도 흔들린다. 개인의 고유한 역사와 시대의 보편적 역사를 병치하고, 윤리와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순간이 이어진다. 마침내 면담자가 구술자의 집을 ”내 현장“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그의 생에 온전하게 가닿았음을 느꼈다. 어떤 이야기를 골라내어 기록으로 남길지 면담자 박정윤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
자매로 오인받을 만큼 닮은 막내이모와 조카 사이의 애증의 역사로 시작해서 가족 간의 착취와 희생, 그리하여 인간사 빠질 수 없는 배신과 혐오, 사랑, 죽음등이 여러 겹의 구조로 맞물려 있다. 이모가 자신을 순정하게 사랑하기를, 어떤 조건이나 전제없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집척한다.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을 과시하지만 이모의 아파트 앞에서 길고양이와 예기치 않게 마주치고 놀라면서 소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전환된다. 막내이모를 향한 스스로의 마음이 어떤 결핍을 채우려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자기 혐오에 맞닥뜨리는 순간, 그 문장들에 날카롭게 찔렸다.
— 황정은, 「문제없는,하루」
모태가 같은 자매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감각하는 법은 각기 다르다. 별 문제없이 하루 일상을 살아내면 그만인 것을, 동생 인범은 매 순간 너무 예철한 눈으로 들여다보고 인과관계와 그 연결고리의 여파에 관해 사유하고 부조리 격파를 주창한다. 무심하면 불행에서 비켜날 수 있을까. 나와 타자 간 온전히 따로 삶을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터널에서 교통사고 장면은 이 모든 것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사고의 피해자, 구조자, 방관자가 연결되어 순간의 전후를 함께 겪는다. 이때 터널로 들어서는 차들을 향해서 사고를 알리기 위해 경적을 세게 울리는 것은 언니 인영이다. 문제를 감각하게 되는 순간, “그들 모두가 그 가능에서 다른 가능으로, 그 순간이 아니라 다른 순간으로 넘어왔다는 걸”(p.314)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