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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불꽃이 있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3월
평점 :
#도서협찬 #서평단
누대로 품어온 불꽃이 사특한 기운은 죄다 사르고, 정결한 것들만 남겨둔 것 같다. 불은 인간의 욕망, 신념, 열정 등으로 화하고, 먹빛 머금은 활자가 되어 생동한다. 열두 편의 글월은 나름의 시간 흐름에 맞춰 순서를 정한 것 같다. 이 한 권의 책은 불이 지나온 궤적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양에서 경성, 그리고 현대 어느 시절에 걸친 이야기들은 저마다 환상과 현실, 신과 자연, 인간 군상 간의 사연을 읊조리느라 여념이 없다. 작가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동양풍 장르문학만이 아니라 환상문학의 총체라고 여겨진다.
역사의 흐름이 담긴 듯 정교하게 짜인 단편집은 환상과 우화의 형태를 빌어, 늘 존재해 온 부조리와 불의를 짚어낸다. 왕과 특권층, 백성들, 평범한 인간과 신 혹은 괴이한 존재들은 각자가 존재하는 세계관 속에서, 이 부조리함을 두고 쟁투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나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눈을 뗄 수가 없다. 시대가, 사회가 억누르고 개인의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심장에서 격동하는 불꽃을 막을 길이 없다. 스스로 북돋우고, 헌신하고, 또 연대하는 장면들은 절절하고 뜨겁다. 비록 그 길이 반드시 승리와 성공을 약속하지 않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면면이, 아름다운 문체 속에서 강렬하게 빛발한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빨간제비부리 댕기」다. 심청전과 같이 여성을 제물로 앞세우는 전래 동화 서사를 전복하는 작품으로, 짧지만 굉장하다. 나머지 단편들 역시 재미나 상상력 범주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지만 이 「빨간제비부리 댕기」가 보여주는 여성의 주체성이 발현하는 장면들, 세상에 고하는 통쾌한 선언이 짜릿하다.
환상이라는 불씨, 캐릭터들이 각자 품은 불꽃, 이 모든 것들이 작가가 써내려가는 서사의 흐름을 살라먹으면서 다시 독자가 내딛고 선 그 지점에 도달한다. 입귀를 잔뜩 벌리고 속엣것을 다 내보일 듯 달려드는 그것은, 모든 불의에 항거하는 이들의 심혼이다. 아름답고 강렬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