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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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숨 막히고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섬세한 삶의 묘사에 감탄했다. 아홉 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줌파 라히리의 첫 단편집 <축복받은 집>은 9개의 단편이 각각 하나의 방처럼 정밀하고도 아름답게 축조되어 있다. 아홉 개의 단편들을 모두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독자들의 마음 한편에는 문자 그대로 ‘축복받은 집’이 한 채씩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단편인 <일시적인 문제>에서부터 독자들은 ‘첫 단편부터 이렇게 좋으면 나머지 단편은 도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하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뱉게 된다.

 

소설 <일시적인 문제>에는 슈쿠마-쇼바 부부가 등장하는데 그들 부부의 관계는 소원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시적인 문제’로 닷새 동안 매일 한 시간씩 그들이 사는 아파트에 정전이 일어나게 되고, 부부는 ‘일시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따로 식사하던 부부가 촛불을 켜고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식사를 하고, 뜸했던 섹스도 다시 하게 된다. 관계는 '일시적으로'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닷새째 되던 날, 예상과 다르게 복구가 빨리 돼서 아파트 정전은 일어나지 않게 되고, 부부는 환한 조명 아래에서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때 ‘일시적인 문제’는 결국 ‘일시적이지 않은 문제’였음이 밝혀지고 삶의 진실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소설은 끝마치게 된다.

 

<질병 통역사>에서는 말 그대로 의사 옆에서 환자가 겪고 있는 증세를 의사에게 통역해주는 '질병 통역사', 카파시씨가 등장한다. 질병통역와 관광안내자 두 직업을 겸업하고 있던 카파시씨는 어느 날 다스씨 부부의 여행안내자를 맡게 된다. 다스 씨 부부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다스 부부는 평범한 부부라기보다는 남매 관계로 오해받을 정도로 자신들의 자녀에게 무심하고, 서로 간의 관계도 그만큼 멀어 보인다. 그런 다스 부부를 보며 카파시씨는 자신과 아내의 모습 즉, 카파시씨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카파시씨 부부도 다스씨 부부만큼이나 소통이 안 되고 권태로운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일일 관광을 맡은 카파시씨가 자신의 또 다른 직업이 질병통역사라고 할 때, 다스 부인은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평생 외교관을 꿈꾸던 그에게 질병통역사란 직업은 부끄러운 것이었는데, 다스 부인은 그 직업에서 지적이고 낭만적인 면을 발견하고 감탄하니, 엉뚱하게도 그는 그녀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카파시씨의 심리를 마치 괴물처럼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서로를 향하던 관심의 배후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이 소설도 결국 그 관계의 균열지점에서 절묘하게 끝을 맺는다.

 

이외의 7편의 소설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물들 간의 관계가 조금씩 삐걱대고, 삶이 조금씩 비틀대다가 그 틈이 완전히 벌어지게 되는 균열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작가는 그 균열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단 한순간도 묘사와 서술의 정확성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가가 정교하게 구축해놓은 집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게 된다.

 

단편이 장편에 비해서 비교우위를 갖는 것은 바로 결말의 무책임성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소설의 구성요소들로 독자를 자신이 정해놓은 목적지로 몰고 간 다음-작가는 물론 여행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그 목적지가 바로 막다른 절벽의 끝임을 밝히면서 독자들을 절벽 밖으로 내던진다. 이때 독자들에게 구호용 밧줄을 던져주지 않는 것은 훌륭한 작가의 미덕일 것이다. 단편소설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매력이 <축복받은 집> 단편‘집’안에 궁극의 형태로 보존되어있다. 이 단편집의 작가의 첫 데뷔작이라는 게 독자로서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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