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화차=인생을 훔친 여자>의 작가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유>는 전형적인 추리소설이라고 보기엔 약간 무리가 있는 것이,르포르타쥬(관계자들의 얘기를 보도하고 , 이야기들을 가끔 소설 형식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등등)라고 불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단다.그래서 사건에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꽉 짜여 하나하나 나타난다.이렇게 흩어지기 쉬운 조각들을 작가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건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배치하며 진상을 하나씩 밝혀나간다.

그리하여 사건이 종결된 이후 그와 관계된 일들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나아가는 이 소설은 아라카와 구의 고급 아파트에서 일가족 살해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한다.집은 고이토 씨가족의 소유여서 고이토 씨와 일가족으로 생각되었으나,얼마전 부터 고이토 씨 가족은 그 집을 떠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 집에서 경매와 관련해 집을 다시 되찾기 위해 고용되어 살고 있던 스나카와 씨 가족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죽었다고 발표된 스나카와 씨의 어머니와 아들,그리고 아내는 다른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 있었고,집을 나갔던 남편이 아닐까 하고 혼비백산한다.그 결과 그가 실종되었던 남편임이 밝혀졌다.그러면 나머지 청년과 중년 여성,그리고 노파는 대체 누구인가? 이들의 신원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사건의 진상도 스르르 풀리게 된다.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처럼 남의 집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

여기서 그녀는 화차에서 보여줬던 것 같이 부동산 경매라는 사회 문제와 가족의 파괴라는 사회 문제를 자연스레 녹여 내고 있으며,수많은 치밀한 캐릭터들의 묘사와 이야기 진행 솜씨도 여전하다.뒷표지에는 <일본 사회의 빛과 어둠,사회와 인간을 폭넓게 발자크적으로 관찰했다>라고 적혀 있는데,발자크가 좀 지루하긴 했지만 이건 안 그랬다구.

어쨌든 현재 최고의 사회파 추리작가답게 멋진 필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추리 팬이라면 놓치지 마셔야겠고,사회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그것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까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좋을 책이다.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많은 저작들도 하루빨리 번역되기를 소망한다.

라스 만차스 통신

라스 만차스 통신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5년 9월

곳곳에서 리뷰를 볼 수 있었던 소설을 좀 늦게야 읽게 되었다.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주인공 소년과 그를 둘러싼 이상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에피소드식으로 구성된 단편집인데,끔찍한 운명을 가진 가족들,<라스 만차스>의 일족인 그들.그러나 주인공은 그 와중에도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그 껍질을 깨낼 힘을 얻게 된다는 점이 그나마 해피엔딩이랄까.전체적으로 읍습한 습지에서 무언가가 스물거리는 느낌?이 강한 글들이었다.독특한 판타지를 원하시는 분들꼐 추천.

위증

위증
페트라 함메스파 지음, 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끝까지 사건의 해결을 보여주지 않는 심리적 긴장감과 인물들 사이의 팽팽하고 미묘한 감정 대립이 돋보이는 소설.근데 너무 어둡고 번역이 좀 별로.

똑똑하지만 평범한 여자인 그레타와 최고의 미인이며 모두의 사랑을 받는 거짓말쟁이(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해 별 어려움도 없이 그녀는 거짓말을 한다)테스.이 두 여자는 이렇게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주 친한 친구이다. 

변호사가 된 그레타는 동료인 니클라스에게 청혼을 받게 되는데,그를 테스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 파혼을 불러오고 말았다.그레타의 곁에 있는 모든 남자들은 모두 테스를 한번 보자마자 빠져버리는 것이다.테스가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그레타는 옆집 남자 얀을 사랑하게 되고,니클라스는 뒤늦게 그레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용서를 빌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떠났다.얀만은 테스에게 소개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레타.그러나 운명의 장난으로 둘은 만나게 되고,항상 그랬듯이 테스와 얀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얀이 테스와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레타.그리고 그레타에게 매달리는 니클라스.이 기묘한 사각관계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유지되는데,얀 부부의 생활이 원만치 않아 보인다 싶더니,테스가 등에 칼이 꽃힌 시체로 발견된다. 

친구의 집에 왔다 이를 발견한 그레타는 얀에게 혐의가 갈까봐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시작하고,니클라스는 그녀가 덮어쓰지 않기 위해서,그리고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서라도 위증에 협조할 수 밖에 없다.네 사람의 팽팽한 관계는 테스의 죽음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빠지게 되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얀의  살인 소설은 정말 자신의 이야기일까?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시원한 답은 밝혀지지 않는다.그러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극한적 감정,심리상테에 대해 아주 잘 표현한 글이다.추리소설 팬,혹은 팽팽한 긴장감을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

아름다움을 훔치다

아름다움을 훔치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7월

아름다움은 악이다-그러므로 미는 파괴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미의 살해>라는 기상천외한 소재가 돋보이는 소설.

부부 뱅자맹과 엘렌은 어느 날 눈과 차 고장으로 어느 산장에 머무르게 된다.평범해 보였던 산장.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이 미를 파괴하기 위해 미인들을 납치 감금해 추하게 만들어 내보내는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도망치려 하지만 미인인 엘렌이 감금되고,뱅자멩은 아내를 구하고 싶다면 미인들을 납치해 오라고 협박당한다.미인들을 추적하고 동선을 파악하고 그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찬찬히 대상을 선택하는 그 사람들. 

뱅자맹은 도망치고 싶지만 아내를 버릴 수는 없었고,그 일에 협조하게 된다. 여러 일들이 있었고,마침내 그들은 탈출했고 그 일을 기억 저편에 묻어버린다.

파격적이고 끔찍한 소설이지만 생생한 공포감과 서스펜스는 충분하다.척 팔라닉의 <인비저블 몬스터>를 연상시키는 책.독특하고 파격적인 소설을 읽고 싶으신 분들꼐 추천.(인비저블 몬스터두요)

용은 잠들다

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전작들보다는 상당히 순수문학적인?분위기를 풍긴다.캐릭터 묘사가 멋지고,읽고 나선 알싸하게 가슴이 아픈 글.추리소설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미야베 미유키라면 일단 집어들게 된 본인.그만큼 그녀의 작품들은 항상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을 유지한다.<용은 잠들다>도 마찬가지.하지만 보통의 사건 수사 추리소설을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하실지도.이 글은 추리의 형식으로 풀어내기는 하지만 캐릭터의 심리 묘사에 더 비중이 있는 듯이 보이니까.

어느 비가 오는 날 소년 신지를 태워 주게 된 기자 쇼고.그들은 뚜껑이 열린 맨홀에 아이가 빠진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는데,신지는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말하며 맨홀을 연 당사자들을 찾아낸다.반쯤은 믿고 반쯤은 의심하는 쇼고.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자칭 신지의 사촌 형이라는 청년 나오야는 신지의 말에 따르면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란다.

그러던 중 쇼고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옛 애인 사에코가 납치된다.이 사건의 해결 과정과 함께 초능력자로서의 신지와 나오야의 생활과 내면이 천천히 펼쳐진다.능력자로서의 삶에 힘겨워하는 나오야와 아직은 자신의 힘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르는 신지.

이들은 여러 일을 겪게 되며 끝무렵 소년 신지는 한 걸음 성장한다.(근데 난 읽으면서 계속 <나의 지구를 지켜줘>의 링이 생각나더라.아 마음아파라ㅠㅠ) 미야베 미유키 팬이시라면 필견.초능력자물? 팬도.그리고 섬세한 심리묘사와 약간은 알싸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 분께 추천.